“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사도행전 9:1-3)
스데반의 순교 이후 성도들에 대한 핍박이 극심해졌습니다. 사울은 핍박의 선봉장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한 살기와 위협이 충천(衝天)하였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인 사울은 사두개인인 대제사장을 찾아갑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갈등 관계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공문을 받기 위해서 자존심을 꺾습니다. 그만큼 그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경멸했습니다. 그는 이 광신자들이 조상들이 섬겨온 하나님을 모독하고, 성전과 모세율법을 경시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사도행전 22:4)
사울이 공문을 받아 다메섹(다마스쿠스, 현재 시리아의 수도)으로 향한 이유는 신자들을 체포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울은 이렇게 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예수님은 일찍이 제자들에게 이러한 일들이 있을 것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요한복음 16:2)
기세등등한 사울은 예루살렘에서북동쪽으로 200여 킬로미터 떨어진 다메섹으로 향합니다. 그곳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정보와 공문까지 있으니 든든합니다. 모든 준비가 마쳐졌습니다. 사정없이 잡아들일 일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개입하십니다. 사울은 정오쯤 되어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렀습니다. 곧 도착입니다. 그런데 정오의 햇살보다 더 밝은 빛이 그에게 갑자기 임했습니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은 어둠 속에서 허우적대던 사울을 만나주셨습니다.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 (사도행전 9:4)
성도들을 사로잡으려 한 자가 예수님께 사로잡혔습니다. 예수님은 사울에게 물으십니다. “왜 너는 나를 핍박하느냐?” 그런데 질문이 이상합니다. 사울은 예수님을 박해한 적이 없습니다. 사울은 그분의 제자들을 박해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신자의 연합”이라는 놀라운 교리를 발견합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몸된 교회가 고통을 당할 때 머리되신 예수님은 함께 고통을 받으십니다. 사울이 신자들을 괴롭힐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같이 아파하셨던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24절을 보십시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수난이 불충분함을 암시하지 않습니다. 위 구절은 교회와 연합하여 계신 예수께서 지금도 교회의 고통에 동참하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 우리와 희노애락(喜怒哀樂)을 공유하시는 예수님을 잊지 마십시오. 당신이 기뻐할 때, 주님은 함께 웃으십니다. 당신이 고난당할 때, 예수님은 같이 울어주십니다. 믿고 회개하는 자는 예수님과 연합되어 있음을 기억하며 담대히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