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6일 “앤 브래드스트리트, 시적인 신학”
오늘은 앤 브래드스트리트(Anne Bradstreet, 1612–1672)가 별세한 날입니다. 1672년 9월 16일, 결핵을 앓던 앤은 앤도버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잉글랜드의 노샘프턴(Northampton)에서 태어난 그녀는 16살에 사이먼 브래드스트리트(Simon Bradstreet)과 결혼 후, 아벨라호(Arbella)를 타고 뉴잉글랜드로 이주했습니다. 앤은 37년간 하나님에 대한 헌신, 출산 전 생각, 병과의 투쟁, 남편에 대한 사랑, 미국에서의 겨울 등에 대한 시를 썼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업무로 집을 비울 때 고독 속에 지은 시들은 종종 “나의 자녀들”이라고 불렀습니다. 1650년에 시집을 출판한 앤 브래드스트리트는 비록 미국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미국 최초의 여성 시인으로 불립니다.
앤 브래드스트리트의 출현은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그리고 원하지도 않았는데 일어났다. 브래드스트리트가(家)의 새로운 거주지인 앤도버 교회의 목사는 앤의 여동생 머시의 남편인 존 우드브리지였다. 우드브리지는 1647년에 영국 시민전쟁 막바지에 청교도 편에 서서 활동하려고 영국으로 돌아갔다. 우드브리지는 영국으로 돌아갈 때, 개인적으로 친구 및 가족과 돌아가며 감상했던 브래드스트리트의 시의 원고들을 모아 출판하게 되었다. 이 서사(序詞)에서 그녀는……여성들은 문학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에 대해 너무 적게 인정한다.”……브래드스트리트는 자신의 시들을 “하늘에 잔뜩 날아오르는 풍성한 깃촉들”로 정당화함으로써, 그 시들이 한층 더 좋게 보일 가능성이 있음을 암시했다. “하찮고 정제되지 않은 이 광산의 광석 / 여러분이 번쩍거리는 금으로 만들어 더 빛나게 해 주시기를”[Kelly M. Kapic and Randall C. Gleason ed., The Devoted Life, 김귀탁 역, 『청교도 고전으로의 초대』 (서울: 부흥과개혁사, 2008), 390-91.]
앤의 자녀들은 엄마의 시를 들으며 컸습니다. 지금도 그녀의 따뜻한 문체는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신학에서 시와 노래를 제거하지 맙시다. 주님은 아름다운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시와 함께 송영으로 귀결되어야 합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과 교제하며 시를 써 내려간 한 여인을 생각하며, 오늘만큼은 나의 고백으로 내 하나님께 노래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녀의 작품은……청교도 신학자들에게서 받은 영향을 분명히 보여 주는 시적인 신학이다. 그녀는……그리스도인의 ‘순례자’로서의 삶에 대한 청교도들의 강조를 가장 잘 표현한 작가일 것이다. 이 주제는 “지금은 쉬고 있는 피곤한 순례자처럼”이라는 시에서 그 절정에 도달한다……
순례자인 나는 이 땅에서 갈 곳 몰라 하고
죄와 근심과 슬픔에 시달리며
나이 들고 아파 나날이 쇠하니
내 흙집은 썩어 없어지는구나.
오, 저 높이 올라가 복 받은 이들과 함께
안식하기를 간절히 기다리노라.[Stephen J. Nichols, The Reformation, 이용중 역, 『세상을 바꾼 종교개혁 이야기』 (서울: 부흥과개혁사, 2009), 208-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