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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7:8-16 설교/2023년 10월 20일 금요 기도회/순종의 순간에 너무도 즉각적으로 주어진 힘일 것이므로, 여러분은 잠시 동안 그것이 여러분의 힘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힘인지를 분간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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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17:8-16

[새번역]
8. 주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다.
9. "이제 너는, 시돈에 있는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에서 지내도록 하여라. 내가 그 곳에 있는 한 과부에게 명하여서, 네게 먹을 것을 주도록 일러두었다."
10. 엘리야는 곧 일어나서, 사르밧으로 갔다. 그가 성문 안으로 들어설 때에, 마침 한 과부가 땔감을 줍고 있었다. 엘리야가 그 여인을 불러서 말하였다. "마실 물을 한 그릇만 좀 떠다 주십시오."
11. 그 여인이 물을 가지러 가려고 하니, 엘리야가 다시 여인을 불러서 말하였다. "먹을 것도 조금 가져다 주시면 좋겠습니다."
12. 그 여인이 말하였다. "어른께서 섬기시는 주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저에게는 빵 한 조각도 없습니다. 다만, 뒤주에 밀가루가 한 줌 정도, 그리고 병에 기름이 몇 방울 남아 있을 뿐입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지금 땔감을 줍고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가서, 저와 제 아들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것을 모두 먹으려고 합니다."
13. 엘리야가 그 여인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방금 말한 대로 하십시오. 그러나 음식을 만들어서, 우선 나에게 먼저 가지고 오십시오. 그 뒤에 그대와, 아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도록 하십시오.
14.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비를 내려 주실 때까지, 그 뒤주의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병의 기름이 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15. 그 여인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다. 과연 그 여인과 엘리야와 그 여인의 식구가 여러 날 동안 먹었지만,
16. 뒤주의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의 기름도 마르지 않았다. 주님께서 엘리야를 시켜서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되었다.

[NIV]
8. Then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him:
9. "Go at once to Zarephath of Sidon and stay there. I have commanded a widow in that place to supply you with food."
10. So he went to Zarephath. When he came to the town gate, a widow was there gathering sticks. He called to her and asked, "Would you bring me a little water in a jar so I may have a drink?"
11. As she was going to get it, he called, "And bring me, please, a piece of bread."
12. "As surely as the LORD your God lives," she replied, "I don't have any bread--only a handful of flour in a jar and a little oil in a jug. I am gathering a few sticks to take home and make a meal for myself and my son, that we may eat it--and die."
13. Elijah said to her, "Don't be afraid. Go home and do as you have said. But first make a small cake of bread for me from what you have and bring it to me, and then make something for yourself and your son.
14. For this is what the LORD, the God of Israel, says: 'The jar of flour will not be used up and the jug of oil will not run dry until the day the LORD gives rain on the land.' "
15. She went away and did as Elijah had told her. So there was food every day for Elijah and for the woman and her family.
16. For the jar of flour was not used up and the jug of oil did not run dry, in keeping with the word of the LORD spoken by Elijah.

사르밧 과부(열왕기 상 17:8-16)

우리는 엘리야에게 대한 보호 조치가 계속되고 은둔한 가운데 있는 그에게 양식이 계속 공급된다는 기사를 여기서 엿볼 수 있다. 하나님을 친구로 모시고 있는 자들은 멸망과 기근을 비웃을 것이니(욥 5:22) 그가 보호해 주시고 부양해 주시는 친구이시기 때문이다. 그릿 시내는 말라 버렸으나 자기 백성에게 대한 하나님의 배려와 친절심은 이완되지 않고, 결핍되지 않았으며, 전과 꼭 같으며 주를 아는 자에게는 그 인자하심이 여전히 계속되고 연장된다(시 36:10). 그릿 시냇물이 고갈되었을 때 요단강은 마르지 않았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째서 엘리야를 요단으로 보내지 않으셨을까?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먹여 살리시는 데에 다양한 방법을 갖고 계셔서 어떤 한 가지 방법에 얽매여 계시지는 않다. 확실히 하나님께서는 이 점을 나타내 보이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기회를 제공하신다. 그 기회는 아는 사람이 생길 곳에서 쓸모있는 자가 되게 하는 기회였다. 하나님께서는 앞에서처럼 엘리야를 산 채로 파묻혀 있게 하시지는 않으신다.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Ⅰ. 그가 보냄을 받은 곳은 사르밧 또는 사렙다였다. 사르밧은 시돈에 속한 한 성으로서 이스라엘 지경 밖에 있었다(9절). 우리의 구주 그리스도께서는 이 말씀이 불쌍한 이방인을 위해 오래 전에 예정된 하나님의 은총이 때가 차매 나타난 것이라고 주목하신다(눅 4:25, 26). 엘리야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많은 과부가 있었다. 그중에는 엘리야를 자기 집에 영접할 사람도 더러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엘리야는 이방 도시이던 시돈의 한 성으로 보내심을 입고 거기에 몸을 나타냄으로써 그 땅을 존귀케 하며 복되게 하였다. 그래서 엘리야는-라이트푸트(Lightfoot) 박사가 말하는 대로-이방에게 속한 첫 선지자가 되었다. 이스라엘은 열방의 우상 숭배로써 스스로 부패하였고 심지어 열방보다 더욱 더 악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을 세상의 부요한 것으로부터 쫓아내어 마땅하다. 엘리야는 자기 동포에게 미움을 받아 추방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후일 사도들이 그런 명령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행 18:6) 이방인에게로 발길을 돌린다. 그러나 하필이면 시돈의 성읍인가? 아마 이것은 당시에 이스라엘의 사무치는 죄였던 바알 숭배가 시돈 사람이었던 이세벨(왕상 16:31)과 함께 거기서 갓 들어왔던 때문이리라. 그러므로 그는 시돈으로 가게 된 것이다. 그래야 그 우상 숭배의 파괴자는 바로 시돈에서 데려오게 되는 것이다. "나는 나의 선지자, 나의 개혁자를 바로 시돈에서 불렀노라." 엘리야의 최대의 원수는 이세벨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세벨의 악의가 무력함을 증명하시기 위해 바로 이세벨의 나라에서 은신할 곳을 찾아 주시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시돈 지방에 한 번 가신 것 외에는 이방인 중에 가시지 않으셨다(마 15:21)

Ⅱ. 엘리야를 접대하도록 지정된 사람은 시돈에서 부유한 상인 중 한 사람이거나 오바댜와 같이 권세있는 자가 아니었다. 오바댜는 아합 집의 장관으로서 선지자들을 공궤한 자이다. 한 불쌍한 과부, 즉 궁핍하고 고독한 과부가 엘리야 선지의 공궤를 하명받은 것이다(즉 능력과 의향의 양면에서 그렇게 되었다). 세상의 약하고 미련한 것들을 사용하시고 그런 것들에게 존귀를 입으시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며 또한 그의 영광이다(고전 1:27).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의미에서 과부의 하나님이시며 과부들을 먹여 주신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께 무엇을 갚아야 할지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Ⅲ. 사르밧에서 그에게 제공된 양식. 섭리는 과부로 하여금 성문에서 꼭 안성맞춤으로 엘리야를 만나게 하셨다. 엘리야와 과부간에 있은 일에 대한 언급에서 우리는 다음 사실을 알 수 있다.

1. 과부의 형편과 품성.

(1) 그 여인은 매우 가난하고 핍절하였던 것같이 보인다. 밀가루 한 움큼과 기름 약간밖에 먹고 살 거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가장 형편이 좋을 때에도 궁핍하였거든 하물 며 모두가 굶주리는 기근에는 그 형편이 최후의 극한 점에 이르지 않았겠는가! 그 여인은 자기가 가진 소량을 먹고 나면 모르긴 하나 그와 아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 줄로 전망하고 있다(12절). 그 여인은 땔감도 없었다. 종이 없으므로 손수 길거리에서 나뭇가지를 줍지 않을 수 없었다(10절). 이렇게 하여 이 과부는 대접하기보다 적선을 받아야 할 형편이었던 것이다. 엘리야는 바로 이런 여인에게 보냄을 받은 것이다. 까마귀가 그를 먹여 주던 때와 마찬가지로 계속 섭리에 의지하여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그 여인에게 보내신 것은 자기 계집종의 비천함을 긍휼히 여기셨음이니 곧 그 여인에게서 구걸하려 함이 아니라 그 집에 하숙시키고자 함이었으며 선지자의 밥상에 대해 후히 지불하시고자 함이었던 것이다.

(2) 그 여인은 매우 겸손하고 부지런했던 것 같다. 엘리야는 그 여인이 나뭇가지를 주워서 그 여인 자신의 빵 구울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10, 12절). 그 여인은 자기 처지를 돌이켜 생각하였으나 자신의 곤경을 불평하지 않았으며 비를 내리지 않으시는 섭리와 다투지도 않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섭리에 잘 순응하였다. 환란 날에 이와 같은 기질을 지닌 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존귀와 구원을 얻을 준비가 가장 잘 되어 있는 자들이라 할 수 있다.

(3) 그 여인은 매우 자비롭고 관대하였다. 이 낯선 자가 가서 마실 물을 좀 갖다 주기를 희망하였을 때 그 여인은 첫 마디에 즉시 갔다(10, 11절). 그 여인은 물이 귀하다는 것을 들어 거절하지도 않았고 물 한 그릇 따라 오는 데 대해 무엇을 내놓을지 묻지도 않았다(그 때는 물이 곧 돈만치 가치가 있었다). 그 여인은 그가 나그네 곧 이스라엘인이란 것을 넌즈시 말하지도 않았다. 시돈인들은 아마 사마리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인과 상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요 4:9). 그 여인은 기아로 말미암아 허약해진 것이나 자신의 급한 일을 들어 변명하지 않았다. 그의 심부름을 가기보다 해야 할 딴 일이 있다고 말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줍고 있던 나뭇가지를 놔 둔채 그를 위해 물을 가지러 갔던 것이다. 아마 그 여인은 엘리야의 근엄한 풍모에 감동되어 물 떠오는 일을 더 기쁘게 여겼을 것이다. 우리는 낯선 사람일망정 기꺼이 친절한 일을 해 주어야만 한다. 우리는 설령 고통받는 자에게 줄 것이 없는 경우 그 때문에라도 더욱 더 그들을 위해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 잔의 냉수는 떠 가지고 오는 수고밖에 들 것이 없지만 결코 그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

(4) 그 여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크게 신뢰하였다. 과부는 자기에게 남아있는 밀가루와 기름이 얼마나 소량인지 자기 모자가 겨우 먹을 정도라는 것을 얘기 하였다. 그러나 엘리야는 자기를 위하여 떡 하나를 만들되 먼저 자기 것을 만들고 난 뒤 그 여인과 그 여인의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고 명하였다. 이것은 그 여인의 믿음과 순종심에 대한 큰 시험이었다. 잘 살펴 보면 그토록 작은 일로 최대의 시험이 성립되는 것 같다. 그 여인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으리라. "아이들을 먼저 먹게 해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선은 가정에서부터 비롯하는 법입니다. 저는 가진 것도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언제 그것이 떨어질지, 또 어디서 생길지도 모르는 판국에 주다니요? 아무도 제가 주리라고 기대할 자가 없습니다." 나발보다 오히려 이 여인이 "내가 내 가루와 기름을 취하여 어디로서인지 알지 못하는 자에게 주겠느냐?" (삼상 25:11)고 물을 만하였다. 엘리야는 사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언급하였는데(14절) 그것이 시돈 여인에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또 설사 이 여인이 여호와란 이름에 대해 경외심을 품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참 하나님으로 존중한다고 하더라도 이 나그네가 여호와의 선지자이며 그의 이름으로 말할 만한 근거가 있는지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굶주린 방랑자가 그 여인을 속이기란 식은 죽 먹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여인은 이 모든 반대의 념을 극복하고 약속에 의지하여 명령에 순종한다. "여인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라" (15절).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마 15:28). 이와 같은 믿음은 이스라엘에서도 만나 본 적이 없었다(마 8:10). 모든 점을 참작할 때 이 일은 두 렙돈밖에 없으면서 그것을 전부 연보 궤에 넣은 과부의 행위(막 12:42)를 능가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여인은 선지자의 말씀을 받아들였다. 즉 이 일로 여인이 손해보지 않을 것이며 이자까지 쳐서 보상받게 되리라는 말을 믿은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자는 하나님께 대한 봉사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빈털털이로 만드는 것을 어렵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즉 적은 것 중에서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을 바치며 그의 몫을 먼저 드림으로써 하나님을 섬길 것이다. 하나님과 거래하는 자들은 신용으로 거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면 딴 모든 것이 더해질 것이다. 율법에 의하면 첫 소산은 하나님께 속하였고 십일조는 맨 먼저 떼어야 했으며 처음 가루 떡으로 거제를 드려야 했다(민 15:20, 21). 이 여인의 믿음은 자신을 부인하고 신적 약속에 의존할 수 있을 정도로까지 확실히 증가하였다. 이러한 믿음의 증가는 그 여인의 기름이 많아진 게 섭리의 나라에서 큰 기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은혜의 나라에서 큰 기적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소망에 대해 믿고 소망 가운데서 순종할 수 있는 자는 복이 있다.

2. 하나님께서 이 여인의 손님에게 대해 베푸시는 배려.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16절). 퍼낼 때마다 그 통과 병에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다 많은 양이 보태어졌던 것이다. 곡식이나 감람나무가 자라면서 불어간다고 해도 이들이 사용되는 가운데 증가하는 것만은 못하였다-홀(Hall) 주교는 그렇게 말한다. 보통의 섭리 속에서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는 것은(고후 9:10) 흔하기 때문에 간과하기 쉬운 하나님의 권능과 자비에 대한 실례이다. 가루와 기름은 저축하는 가운데 많아 진 것이 아니라 소비하는 가운데 증가되었던 것이다. 흩어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잠 11:24). 비록 적은 것이더라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축복하시는 때에는 그것이 기대 이상의 굉장한 효과를 나타낼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풍성한 것이라고 해도 하나님이 그것을 불어 버리실 때에는 거의 유야무야한 상태로 되어 버린다(학 1:9; 2:16).

(1) 이것은 선지자를 부양시켰다. 그가 매일 먹는 떡은 계속적인 기적의 산물이었다. 엘리야는 그때까지 떡과 고기로 배를 채웠었는데 이제는 떡과 기름으로 요기하게 되었다. 그때 사람들은 우리가 버터를 사용하듯 기름을 사용하였다. 만나는 이 두 가지를 다 의미하였으니 이는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 맛과 같았기 때문이다(민 11:8). 엘리야는 하루에 두 번씩 고기를 먹어 오다 이제는 전혀 입에 대지도 못하게 되었지만 이를 감사히 여겼다. 육류를 상식해 왔기 때문에 고기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사람, 즉 최소 하루 한 번은 고기를 먹어야 하는 자는 만족스럽게 엘리야한테 하숙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기적의 떡일망정 떡만으로는 살 수가 없었을 것이다.

(2) 그것은 가난한 과부와 그의 아들을 부양시켰으며 선지자를 접대한 데 대한 보상이 되었다. 하나님의 백성과 사역자들에게 친절을 베풀어서 손해될 것은 하나도 없다. 선지자를 영접한 그 여인은 선지자의 상도 받게 되었다. 그 여인은 그에게 방을 제공하였는데 그는 온 가족이 먹을 수 있는 양식으로 되갚아 주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에게 문을 열어 주는 자들한테 들어오셔서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자기와 더불어 먹게 되리라고 약속하셨던 것이다(계 3:20). 본문의 엘리야처럼 그는 자기를 영접하는 자를 그 자신의 향응뿐만 아니라 그들의 향응에도 초대하신다. 상은 얼마나 봉사에 부합한지 살펴보자. 여인은 관대하게도 선지자에게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주었다가 자신과 자신의 아들을 위한 많은 떡으로 보상받았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독자를 하나님께 바쳤다가 많은 무리의 아비가 되리라는 말씀을 듣게 되었다. 경건한 일이나 자선에 투자한 것은 가장 높은 고리로 가장 안전하게 금리를 놓는 셈이다. 이 가난한 과부는 선지자에게 보잘 것 없는 한 덩어리의 떡을 주었을 뿐인데 그 보답으로 과부와 그 아들은 여러 날 동안 먹게 되었고(15절) 모두가 굶주리는 기근의 시기에 2년 이상이나 연명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으로 음식을 얻게 되고 엘리야와 같은 훌륭한 분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니 그 음식은 갑절 이상 맛이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에게는 환난 때에 부끄럽지 아니하며 기근의 날에도 풍족하게 되리라고 약속한다(시 37:19).

열왕기상17장8-16절 설교20231020금요기도회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112.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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