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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1일 스펄전 저녁묵상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요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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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1일 (저녁의 묵상)
○ 제목: 예수와 함께 앉은 자

○ 요절: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요 12:2)

  그는 우리의 부러움을 받아야 합니다(즉 그는 우리의 부러움의 대상입니다). 마르다가 되어 섬기는 것도 좋지만, 나사로가 되어 주님과 교제하는 것은 더 좋습니다. 모든 목적에는 시기가 있고, 각각의 시기는 아름다운 제철(전성기)이 있습니다. 
  동산의 나무들 중 그 어떤 것도 친교의 포도만큼 그렇게 달콤한 송이들을 맺지 못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앉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행동을 보고, 그분의 미소를 받는다는 것은 매우 큰 축복이므로 분명히 나사로를 행복하게 했을 것입니다. 
  주님의 연회장에서 우리의 사랑하는 주님과 함께 잔치상을 먹는 것이 우리의 특권이었을 때는, 이 세상의 왕국들로 인하여는 조금도 한숨을 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분은 본이 되어야 합니다(즉 본받아져야 할 대상입니다). 
  만일 나사로가 예수께서 계셨던 식탁에 있지 않았다면 그것은 이상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그를 죽은 자로부터 소생시켰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전엔 죽었습니다. 그리고 죄의 무덤에서 악취를 내는 나사로와 같았습니다. 예수께서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생명에 의하여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분과 떨어져 사는 것에 만족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분이 그의 형제들과 잔치상을 먹기 위하여 오시는 그의 애찬의 식탁에서 그분을 기억하지 못하겠습니까? 
  우리는 회개해야 하고 그분이 우리에게 명하신대로 행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가장 작은 소원이라도 우리에게 법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사로가 유대인들이 "보라 그를 어떻게 사랑하였는가?"(요 11:36)라고 말한 분과 계속적인 교제없이 살았다면, 나사로에게는 수치스러운 삶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신 우리에게 있어서도 용서될 수 있겠습니까?(즉 우리도 주님과 계속적인 교제 없이 산다는 것은 용서될 수 없는 수치입니다) 
  나사로가 그의 생명없는 시체에 눈물을 흘리신 분에게 냉담했다면 나사로 안에 있는 큰 배은망덕을 보인 것이었을 것입니다. 구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셨을 뿐만 아니라 피를 흘려주셨는데, 우리 안에서 어떻게 그런 배은망덕을 보이겠습니까? 형제들이여 와서, 우리의 하늘의 신랑에게로 돌아갑시다. 그리고 그분과 친밀한 교제를 갖기를 청합시다. 

Evening

"Lazarus was one of them that sat at the table with him."
John 12:2

He is to be envied. It was well to be Martha and serve, but better to be Lazarus and commune. There are times for each purpose, and each is comely in its season, but none of the trees of the garden yield such clusters as the vine of fellowship. To sit with Jesus, to hear his words, to mark his acts, and receive his smiles, was such a favour as must have made Lazarus as happy as the angels. When it has been our happy lot to feast with our Beloved in his banqueting-hall, we would not have given half a sigh for all the kingdoms of the world, if so much breath could have bought them.

He is to be imitated. It would have been a strange thing if Lazarus had not been at the table where Jesus was, for he had been dead, and Jesus had raised him. For the risen one to be absent when the Lord who gave him life was at his house, would have been ungrateful indeed. We too were once dead, yea, and like Lazarus stinking in the grave of sin; Jesus raised us, and by his life we live--can we be content to live at a distance from him? Do we omit to remember him at his table, where he deigns to feast with his brethren? Oh, this is cruel! It behoves us to repent, and do as he has bidden us, for his least wish should be law to us. To have lived without constant intercourse with one of whom the Jews said, "Behold how he loved him," would have been disgraceful to Lazarus; is it excusable in us whom Jesus has loved with an everlasting love? To have been cold to him who wept over his lifeless corpse, would have argued great brutishness in Lazarus. What does it argue in us over whom the Saviour has not only wept, but bled? Come, brethren, who read this portion, let us return unto our heavenly Bridegroom, and ask for his Spirit that we may be on terms of closer intimacy with him, and henceforth sit at the table with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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