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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0년 1월 6일, 존 포셋(John Fawcett, 1740-1817) 출생, "또 이별할 때에 맘 비록 슬퍼도 주안에 교통하면서 또 다시 만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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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 믿는 형제들 사랑의 사귐은 천국의 교제 같으니 천국의 교제 같으니 참 좋은 친교라
Blest be the tie that binds Our hearts in Christian love;
The fellowship of kindred minds Is like to that above. 
2. 하나님 보좌 앞 한 기도 드리니 우리의 믿음 소망이 주 안에 하나라
Before our Father’s throne, We pour our ardent prayers;
Our fears, our hopes, our aims are one, Our comforts, and our cares.
3. 피차에 슬픔과 수고를 나누고 늘 동거동락하는 중 위로를 나누네
We share our mutual woes, Our mutual burdens bear;
And often for each other flows The sympathizing tear.
4. 또 이별할 때에 맘 비록 슬퍼도 주안에 교통하면서 또 다시 만나리
When we asunder part, It gives us inward pain;
But we shall still be joined in heart, And hope to meet again.

오늘은 “주 믿는 형제들”을 작사한 존 포셋(John Fawcett, 1740-1817)이 태어난 날입니다. 1740년 1월 6일, 포셋은 영국 리젯그린(Lidget Green)의 가난한 가정에서 출생했습니다. 12살에 부모를 여읜 그는 런던으로 가서 하루 14시간씩 양복점의 견습생으로 일하며 독학하였습니다. 포셋은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을 통해 신앙의 눈을 떴고, 조지 휫필드의 집회에 참석해서 그의 설교를 듣고 회심했습니다. 그의 나이 16살 때의 일이었습니다. 25세 때 침례교 목회자가 된 포셋은 웨인스게이트(Wainsgate)의 작은 교회에서 사역하였습니다. 그가 시골교회를 섬긴지 7년이 되었을 때, 런던의 카터스레인 교회(Carter's Lane Baptist Church)의 청빙을 받게 됩니다. 영향력 있는 교회에서의 사역을 꿈꾸며 떠날 준비를 마친 포셋은 고민 끝에 짐을 풀었습니다. 소박하고 가난한 이들과 여생을 함께 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연을 배경으로 나온 찬송이 바로 “주 믿는 형제들”(새찬송가 221장, 통일찬송가 525장)입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그곳에서 꽃을 피우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인고의 노력을 경주하며 주님을 바라봅니다. 부르심 따라 살기를 원합니다.

그는 자신이 이 성도들을 등지고 도저히 떠날 수 없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가난하고 초라한 삶이었지만 그가 이 교회에서 성도들과 나눈 사랑의 교제는 천국에서의 사귐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성도들의 도움으로 마차에 올렸던 짐을 다시 내려놓고 교회로 들어가 기도를 한 뒤 찬송시를 써 내려갔다. 찬송시의 제목은 “형제애(Brotherly Love)”라고 썼는데, 제목 그대로 1782년에 그의 찬송집에 실렸다. 그는 천국의 체험을 실생활에서 실제로 누리면서 살았던 참 행복한 사람이었다. 1793년에 영국 브리스톨(Bristol)에 있는 침례교 아카데미의 총장으로 청빙을 받았지만 같은 이유로 이 교회를 떠나지 못하고 거절을 하였다. 그가 유일하게 그곳을 떠났던 시간은 1811년에 미국의 대학으로부터 신학박사 학위를 수여하기 위해서 잠깐 자리를 비웠을 때뿐이었다.[석훈, 『알고 부르면 은혜로운 찬송가』 (서울: 예영, 2011), 1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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