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6일
“11세기의 영적 임재설”
오늘은 투르의 베렝가(Berengar of Tours, 혹은 베렝가리우스[Berengarius], 1005-1088)가 죽은 날입니다. 1088년 1월 6일, 베렝가는 유배지 생콤 섬(the island of St. Cosme)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투르의 마르티노 대학 학장이었던 베렝가는 성찬에 있어서 전통적인 화체설(化體說, Transubstantiation)을 부인했습니다. 그는 신앙의 눈으로 성찬을 인식하고, 영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베렝가는 이러한 믿음으로 인해 극심한 핍박을 받았습니다.
화체설은 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 때 구속력 있는 교의로 정해졌다……사실상 “그리스도의 희생과 성찬의 제사는 하나의 유일한 제사이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제물로, (예배자들을 대표하는) 성직자를 성부 하나님께 바치는 자로 삼는다. 축성(祝聖)시,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바뀐다. 그러므로 신자들이 축성된 빵과 포도주에게 예배하는 것은 합당할 뿐 아니라 필요한 일이다. 교황 레오 13세는 성찬 제단에서 “모든 자연 법칙은 중단되고”, “빵과 포도주의 전체 실체(substance)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한다.”고 기록했다.[Michael S. Horton, The Christian Faith: A Systematic Theology for Pilgrims on the Way (Grand Rapids: Zondervan, 2011), 804.]
베렝가는 중세교회가 주장한 화체설을 비판하고 영적 임재설을 주장했습니다. 11세기에 이렇게 용감하게 제도권에 대항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그는 어거스틴과 제롬, 암브로스와 스코투스 등의 권위를 빌어 자신의 입장을 변호했지만, 결국 이단으로 단죄되어 옥에 갇혔습니다. 생명의 위협 앞에서 그는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으나, 죽는 날까지 이를 부끄러워하며 처음의 믿음을 지켰습니다. 베렝가는 로마가톨릭교회 자체를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철학적 해석으로 경도(傾倒)된 성찬을 성경적 해석과 믿음으로 회복시키기 원했던 것뿐이었습니다. 두 번이나 출교를 당하고, 대적들로부터 중상모략을 당하면서도 외로이 자신의 믿음을 지킨 중세초기의 사상가를 생각하며 나는 얼마나 성찬을 의미 있게 여기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나의 교회에서의 성찬식은 고난과 죽음으로 점철된 장례식의 재현은 아닌지요? 성찬은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은혜의 수단입니다. 균형 잡힌 성경적 성찬이 지역교회마다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소망 가운데 승천과 재림 사이에서 성찬을 즐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기념함(ἀνάμνησις)은 결코 과거의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추도식’만이 될 수는 없다. 그리스도의 성찬 제정 말씀을 읽고, 포도주와 빵을 믿음으로 받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실제로 마시고 먹는다. 기념은 성령으로 성찬에 현존하신 그리스도와의 교제이다……로마교의 미사는 그리스도의 임재보다는 십자가라는 과거를 반복하면서, 추도하는 예식이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로마교의 화체설은 그리스도의 임재를 신앙과 분리시키는 오류를 범한다.[유해무, 『개혁교의학: 송영으로서의 신학』 (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7), 5.
'기본카테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쁜 날 (BY 김지용) (0) | 2018.01.06 |
---|---|
창세기 5:1-32 (2018년 1월 5일 금요 새벽 기도회, 찬송 - 복 있는 사람 누구뇨) (0) | 2018.01.06 |
2018년 1월 6일 가정 예배 순서지 (0) | 2018.01.06 |
1740년 1월 6일, 존 포셋(John Fawcett, 1740-1817) 출생, "또 이별할 때에 맘 비록 슬퍼도 주안에 교통하면서 또 다시 만나리" (0) | 2018.01.06 |
새 노래 "살아서나 죽어서나"(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문) by 김지용 (0) | 2018.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