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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9일 가정 예배 순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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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에스라 9:6)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도착한 지 4개월이 지났습니다. 방백들은 에스라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한 가증한 일에 대해 알려줍니다. 그들은 이방인의 딸을 아내와 며느리로 삼았습니다. 지도자들이 솔선수범하여 이 죄악의 선두에 섰습니다. 성경은 다른 민족과의 결혼을 무조건 금지하지 않습니다. 모세와 요셉 등의 사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고, 과거의 우상을 버린다면 얼마든지 혼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회개와 개종의 일 없이 무분별한 결혼이 성행하고 있었습니다. 에스라는 기가 막혀 앉아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손을 들고 기도합니다. 에스라의 기도는 모두 자백과 통회입니다. 애통만 있고, 간구가 없습니다. 그는 이 죄악의 엄중함을 깨달았습니다. 주님께서 약속을 친히 이루사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셨지만 그 호의를 발로 차버린 현실을 직시했습니다. 나의 기도는 너무 빨리 청원으로 달려갑니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죄를 미워하고, 토해내는 데에는 인색합니다. 본론으로 속히 건너뛰려는 나의 문제를 에스라는 깨우쳐 줍니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잠언 28:13)

 

에스라는 무리의 죄를 자신이 지은 죄로 여깁니다. 그는우리 죄악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목에 핏대를 세워 지적하고, 심판하지 않습니다. ()에 구멍이 뚫렸습니다. 우리 모두의 목숨이 달린 문제입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로 치닫는 우리 시대에 에스라의 자세가 속히 회복되기를 소원합니다. 에스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모두를 처단하신다 해도 자신들은 할 말이 없으며, 그럼에도 불구하여 하나님은 여전히 의로우시다고 선언합니다.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니 우리가 남아 피한 것이 오늘날과 같사옵거늘 도리어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이로 말미암아 주 앞에 한 사람도 감히 서지 못하겠나이다” (에스라 9:15)

 

이것이 도르트 신조와 정통 기독교의 고백입니다. 죄인은 하나님께 따질 수 없습니다. 죄에 빠진 인류를 처단하시는 것은 의로우신 하나님의 당연한 심판입니다. 그러나하나님 여호와께서 얼마를 남겨 두어 피하게하셨습니다( 9:8). 받아 마땅한 심판 속에서 건짐 받은 이들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러한 의식이 에스라로 하여금 통회자복하게 만들었습니다. 주여, 죄를 가증히 여기게 하시고 아버지 앞에서 철저히 자백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선하신 기쁘심이 은혜로운 선택의 유일한 원인이다. 이 선하신 기쁘심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든 가능한 자질이나 행위 가운데 어떤 것을 구원의 조건으로 정하시는 것에 있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공통된 죄인의 무리 가운데 특정한 사람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는 것에 있다.[Cornelius Pronk, Expository Sermons on the Canons of Dort, 황준호 역, 『도르트 신조 강해』 (경기: 그책의사람들, 2012), 472.]

1월 9일 가정 경건회.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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