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5일 해리 아이언 사이드(Harry A. Ironside)의 죽음
오늘은 미국의 훌륭한 전도자요 설교자인 해리 아이언사이드가 소천한 날입니다. 1876년에 캐나다에서 태어난 그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산 영적인 인물입니다. 평생 7,500회의 설교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했습니다. 그는 믿음의 사람,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제가 결코 잊지 못할 교훈이었습니다. 종종 대충 대충 하려 하거나, 최선을 다하지 않고 되는대로 하고자 하는 시험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 그럴 때마다 저는 저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죽으셨던 주님을 위해 이 모든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의 각성과 분발이 새롭게 일어나는 것을 경험합니다."
1951년 1월 15일 아침, 아이언사이드 부부는 집회 장소에 가려고 막 호텔을 떠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해리는 몸이 편치 않음을 감지했지만 소화불량이라고 생각하고 계획대로 일을 추진했습니다. 사실은 심장 마비 증세였습니다. 그는 “내게 의의 문을 열지어다 내가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로 시작하는 시편 118편 19-29절을 본문으로 설교했는데, 목소리가 평소 같지 않았습니다. 그는 저녁의 설교 약속을 지키려 했지만 의사의 강권으로 오후 5시에 병원으로 인도되었습니다.
버트 레이몬드가 해리 대신 설교를 한 저녁 집회를 마치고 앤과 레이드로 부부는 해리를 보려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의 병실에 들어서면서 앤이 물었습니다. “여보, 우리 함께 성경을 읽을까요?”
“난 금방 일곱 장을 읽었소.” 해리가 대답했습니다.
세명의 방문객은 잠시 앉아 있다가 다음날 아침 그를 볼 것이라는 안도감을 가지고 병실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새벽 3시 30분 그들은 해리 아이언사이드가 본향으로 갔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날은 1951년 1월 15일이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자기의 안위보다 하나님의 뜻을 좇은 사람, 죽기 직전까지 성경을 사랑했던 거인을 기억합시다. 그는 어린 시절 육신의 아버지를 잃었으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75년 동안 아이언사이드를 자녀로서 진실하고 자비롭게 대해주셨습니다. 아이언사이드의 정신을 배웁시다. 우리도 그처럼 후손들에게 영적 유산을 물려주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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