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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4년 3월 10일, 윌리엄 밀른(William Milne, 1785–1822)이 자바의 수도에 도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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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0일 “자존심을 꺾는 겸손과 충성”

오늘은 윌리엄 밀른(William Milne, 1785–1822)이 자바의 수도에 도착한 날입니다. 1814년 3월 10일, 중국주변에서 합법적으로 선교할 수 있는 근거지를 찾아 항해하던 밀른은 바타비아(지금의 자카르타)에 여정을 풀었습니다. 밀른은 중·동부 자바와 마두라 섬을 돌며 중국어 성경의 분책을 배포하며 선교활동을 벌이는 한편, 그곳에 살고 있는 중국인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당시 청나라에서는 선교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고, 선교사의 거주도 용이하지 않았습니다.

밀른의 이 동남아시아 여행은 극히 의미 있는 것이었다. 즉 동남아시아 선교지의 시찰, 중국선교를 목적으로 한 선교기지 최적지의 선정이라는 사명을 수행함과 동시에 처음으로 중국어로 번역된 성경을 다수 휴대하고 그것을 가는 곳마다 배포하였으며, 또한 복음을 널리 전파한 최초의 여행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 여행에서 돌아온 밀른은 모리슨과 상의한 후 말라카에 중국선교를 목적으로 한 선교기지를 건설하기로 결정하였다. 다음과 같은 이유로 말라카가 선교기지 건설의 후보지로 선정되었다. ① 말라카는 동남아시아 교통의 요로에 위치해 있다. ② 말라카는 중국인 전도라는 측면에서 볼 때 중국인에 접할 수 있는 가장 적당한 지점이다. ③ 말라카는 기후가 비교적 온화하여 선교사의 자녀를 위한 학교와 연구소의 장소로서, 또한 병들거나 건강을 해친 선교사와 그 미망인의 휴양지로서 적당한 장소다. ④ 말라카는 당시 네덜란드의 영지이나 영국이 세력을 갖고 있던 곳이고, 또한 그 지방에 주재하던 영국인 친구들로부터 최량의 원조를 받을 수 있는 전망이 있다.[조훈, 『윌리엄 밀른: 말라카 선교를 통한 중국 선교기지의 개척자』 (서울: 그리심, 2008), 249.]

밀른은 모리슨과 함께 성경을 중국어로 번역한 선교사였습니다. 런던선교회 지원 당시 밀른은 선교보다는 공장에서 일을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의 허름한 차림새 때문이었습니다. 밀른은 나무를 베고, 물을 긷는 것이라도 선교에 관한 것이라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말하며 심사위원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밀른은 중국최초의 목사 양발에게 세례를 주었고, 문서선교와 교육선교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밀른의 겸손과 충성을 닮기 원합니다. 서글픈 자존심을 내세우다 부르심을 가벼이 여기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원 씨: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마음에 불편해하고 즐거워하지 않아 다 회개하기를 기뻐하지 않을 것입니다. 장 씨: 사실은 회개하는 것이 편안하고 즐거움이 되는 근본입니다……제가 수년 전에 왼쪽 팔에 종기를 치료하려고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말하기를 종기의 뿌리가 깊어 반드시 뿌리를 뽑고 고름을 짜낸 후에 봉합해야 하고, 그대로 방치하면 팔을 못 쓰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 하룻밤을 지냈습니다. 그런데 의사가 다시 권면하여 말하기를 아픈 것을 참아 뿌리를 파내면 잠시 동안 고생하겠지만, 만일 방치하면 팔도 못 쓰게 될 뿐 아니라 목숨도 보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사람이 죄를 고치는 것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면 반드시 죄사함을 얻지만……예수님을 믿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지옥의 영원한 형벌을 면하지 못하게 되니 이것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회개하는 잠시의 괴로움과 지옥의 형벌 중 어느 것이 더 견디기 힘들겠습니까?[William Milne, 『장원 양우 상론』, 마포삼열 19세기 한글역, 김홍만·이스데반 현대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2),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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