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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4일 로마서 4장 “쪼갠 짐승 사이를 홀로 지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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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4일 로마서 4장 “쪼갠 짐승 사이를 홀로 지나신 하나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로마서 4:3)

바울은 창세기 15장 6절을 인용하며 아브라함의 칭의에 대해 말합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And he believed the LORD, and he counted it to him as righteousness/ESV)”

하나님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믿음을 의로 여겨 주셨습니다. 그가 율법을 지킴으로 의로움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죄 많고 의심 많은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그 순간부터 그는 칭의의 은혜를 소유한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칭의의 약속을 비준(批准)하시기 위해 친히 쪼갠 짐승 사이를 지나셨습니다. 이로써 복스러운 언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아브람은 이 위대한 언약 이후로도 많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주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하갈을 취한 것입니다. 약속을 믿지 못하고 범죄한 아브람의 몸이 쪼갠 짐승처럼 갈라져야 할까요? 아닙니다. 언약은 변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고대근동지방에서는 언약체결시 봉주(封主)와 봉신(封臣)이 나란히 제물 사이를 걸었습니다. 누구라도 주종서약(主從誓約)을 깨뜨린 자는 쪼개진 동물과 같은 형벌을 받아도 좋다는 합의가 약속에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의롭다 하시고, 그와 언약을 체결하시면서 홀로 고기 사이를 걸으셨습니다.

자신의 충성스러운 봉신에게 왕의 하사품을 선사하는 전형적인 종주처럼, 여호와는 아브람에게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적의 세력에 대한 방어자요 미래를 위한 유업을 주는 수여자이시다. 아브람은 명백한 상황에 근거해서 하나님께 항의한다: 후사가 없으므로 미래도 없다. 아브람이 자신의 개인적 행동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담보하려 시도했을 때, 여호와는 아브람의 유업은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통해(사라를 통해)서만 올 것이라는 것을 아브람에게 확신시켜 주신다. 7-11절에서 이 약속은 조약을 비준하는 당시 고대 근동 지역의 자르는 의식의 하나에 대한 환상 가운데서 인 쳐진다. 그러나 이 경우, 언약 당사자는 쪼개진 짐승 사이로 함께 걷지 않는다. 대신 하나님만이 걸으시는데 이것은 약속을 지키는 모든 책임을 끝까지 지시며,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한 모든 저주를 받으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일방적 약속이다.[Michael Horton, God of Promise, 백금산 역, 『언약신학』 (서울: 부흥과개혁사, 2009), 60.]

R. C. 스프로울은 자신이 만약 감옥에 갇히게 될 때 단 한 장의 성경만 택할 수 있다면 주저 없이 창세기 15장을 택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얻은 칭의는 죄인에게 감미로운 음악과 같습니다. 마땅히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제멋대로 살며, 죄를 먹고 마신 나의 몸이 쪼개져야 옳습니다.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았고, 죄인 줄 알면서도 행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이 대신 쪼개지셨습니다. 주님은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의 시작과 완성을 모두 홀로 이루셨습니다. 그러니 믿으십시오. 경건하지 아니할지라도 믿고 의지하는 자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 드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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