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5일 (저녁의 묵상)
○ 제목: 인자(人子)
○ 요절: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요 3:13)
우리의 주님은 얼마나 자주 "인자(人子)"란 칭호(명칭)를 사용했습니까? 그분이 원하셨다면, 그분은 항상 그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 영존하시는 아버지, 기묘자, 모사, 또는 평강의 왕이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주1).
그러나 예수님의 겸양(자기를 낮추심)을 보십시오! 주님은 그 자신을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라고 부르시는 것을 선호(選好)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주로부터 겸손의 교훈을 배웁시다. 위대한 호칭(타이틀)이나 오만한 자리들(신분)을 추구하는데 몰두(집념)하지 맙시다. 그런데 주님의 이름에는 훨씬 더 매력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성(人性)을 매우 많이 사랑하셔서 그것에 영광을 주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즉 예수님은 인성을 매우 존중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인자(人子)라는 것은 높은 영예이고, 진실로 인성(人性)의 가장 위대한 존엄입니다.
주님은 인성의 가슴에 훈장(왕족 표시의 별들)을 달기 위하여, 그리고 아브라함의 씨(후손)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이 이름(인자)을 표시한 것입니다.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 - 그분이 이 말씀(인자)을 하실 때마다 아담의 자녀들의 머리둘레에 영광의 빛(후광)이 둘려집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층 더 보배같은 사상이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백성과 하나(oneness)임과 그의 백성과의 동감을 표현하시기 위하여 그 자신을 인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두려움 없이 주님께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키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슬픔과 고통을 주님께 가져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체험에 의하여 그것들(슬픔과 고통)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인자(人子)"로서 친히(몸소)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에 능히 우리를 위로하실 수 있습니다(주2).
복되신 예수님, 만세! 주님은 주님이 우리의 형제이고, 우리의 한 친구라는 것을 인정하시는 아름다운 이름을 주님 자신에게 주셨습니다[즉 인자(人子)는 주님께서 우리의 형제와 친구가 되어 주시겠다는 약속으로 주님 자신에게 붙인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인자(人子)라는 주님의 이름은 주님의 은혜와 주님의 겸손과 주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나타내신 소중한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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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사 9:6.
주2. 히 4:15.
Evening
"The Son of man."
John 3:13
How constantly our Master used the title, the "Son of man!" If he had chosen, he might always have spoken of himself as the Son of God, the Everlasting Father, the Wonderful, the Counsellor, the Prince of Peace; but behold the lowliness of Jesus! He prefers to call himself the Son of man. Let us learn a lesson of humility from our Saviour; let us never court great titles nor proud degrees. There is here, however, a far sweeter thought. Jesus loved manhood so much, that he delighted to honour it; and since it is a high honour, and indeed, the greatest dignity of manhood, that Jesus is the Son of man, he is wont to display this name, that he may as it were hang royal stars upon the breast of manhood, and show forth the love of God to Abraham's seed. Son of man--whenever he said that word, he shed a halo round the head of Adam's children. Yet there is perhaps a more precious thought still. Jesus Christ called himself the Son of man to express his oneness and sympathy with his people. He thus reminds us that he is the one whom we may approach without fear. As a man, we may take to him all our griefs and troubles, for he knows them by experience; in that he himself hath suffered as the "Son of man," he is able to succour and comfort us. All hail, thou blessed Jesus! inasmuch as thou art evermore using the sweet name which acknowledges that thou art a brother and a near kinsman, it is to us a dear token of thy grace, thy humility, thy love.
"Oh see how Jesus trusts himself
Unto our childish love,
As though by his free ways with us
Our earnestness to prove!
His sacred name a common word
On earth he loves to hear;
There is no majesty in him
Which love may not come n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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