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4일 “포사이스 선교사와 애양원”
오늘은 포사이스(Wiley Hamilton Forsythe) 선교사가 한센병에 걸린 여인을 만난 날이자, 여수 애양원이 시작된 날입니다. 1909년 4월 4일, 포사이스는 급성 폐렴에 걸린 오웬(Clement C. Owen) 선교사를 치료하기 위해 목포에서 광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광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방치된 한센병 환자를 발견한 포사이스는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음에도 그녀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포사이스 선교사는 피고름으로 얼룩진 누더기 차림의 환자를 자신의 조랑말에 태웠고, 자신은 도보로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포사이스가 광주진료소에 도착했을 때 이미 오웬은 별세한 상태였습니다. 진료소 사람들이 한센병 환자에 대해 항의했기 때문에 포사이스는 벽돌 가마터에 환자를 기거하게 하고는 침구와 옷가지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오웬 부인은 포사이스가 그 환자를 데려오는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벽돌 가마에 모인 사람들은 포사이스의 사랑에 넘치는 손을 의지하고, 겨우 걸어 내려오는 이 여인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속으로 ‘어쩌면 주님과도 같아.’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신사처럼 말쑥하게 차려입은 포사이스는 병으로 냄새나고 오랫동안 돌보지 않아 불결하기 짝이 이 여인의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이 여자의 머리카락은 아마 몇 달, 혹은 몇 년간 빗지 않은 것 같았고, 옷은 누덕누덕하여 아주 더러웠으며, 발과 손은 부어올랐고, 온통 상처로 덮여 있어서 역겨운 냄새를 품어내 견딜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한쪽 발은 짚신이었고, 다른 쪽은 두꺼운 종이로 묶여 있었고, 걸을 때 심하게 절었습니다.”[박명수, 『한국교회사의 감동적인 이야기』 (서울: 국민일보, 2006), 43.]
여인은 2주 만에 세상을 떠났지만, 한센병 환자들은 소문을 듣고 광주로 찾아왔습니다. 선교부는 3칸짜리 집을 지어 환자들을 수용했고, 영국 극동나병협회에 요청하여 1912년에는 광주군 효천면 봉선리에 한센 병원을 세웠습니다. 이 병원은 1926년에 총독부로부터 퇴거 명령을 받아 여수로 옮기게 된 이후부터 애양원으로 불렸습니다. 병원을 옮길 때, 환자들은 1918년에 순직한 포사이스의 기념비를 어깨에 메고 15일을 걸었습니다. 포사이스가 여인을 조랑말에 태웠을 때, 그의 귀는 잘려진 상태였습니다. 1905년 의료사역 후 귀가 도중 한국인 괴한에게 습격을 받아 얻은 상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포사이스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복음은 설득과 함께 감동을 제공합니다. 이런 감동이 나를 통해서도 흘러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는 와병 중에도 7년간 미국 각지를 순회하면서 한국 선교에 대한 강연을 하였다. 미국 남장로교 총회에서 발행하는 ≪Missionary≫에 선교 사역을 촉구하는 글을 게재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가장 싼 것은 한국인입니다. 누구도 이들의 영혼이나 육체에 대하여 신경 쓰지 않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의 친구여! 이들이 벌거벗은 채로 앉아서, 무감각하게 죽어가는 것을 아무도 돌보지 않다니……시간이 없습니다. 앞으로 나갑시다.” 한국으로 보낼 선교사를 모집하는 일 외에도 한센병 환자를 돌보기 위한 성금 모금 등 숱한 일을 했다. 몸은 미국에 있었지만 마음은 언제나 한국의 환자, 장애인, 늙은이, 무의무탁 어린이, 부랑자, 한센병 환자들에게 있었다.[인요한, 『내 고향은 전라도, 내 영혼은 한국인』 (서울: 생각의나무, 2010),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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