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4일 욥기 9장 “인생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중재자”
“진실로 내가 이 일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욥기 9:2)
빌닷의 공격에 대해 욥이 대답합니다. 욥은 빌닷의 교리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인정합니다.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은 아무리 도덕적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존전에서는 불의한 존재임을 가르쳐줍니다.
13문: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의 의(義)를 만족시킬 수 있습니까?
답: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죄(debt)를 더해가고 있을 뿐입니다.
욥은 사람이 하나님께 변론하기를 좋아할지라도 천 마디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욥 9:3). 우리는 로마서와 욥기가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로마서는 죄인의 비참을 낱낱이 파헤칩니다. 누구도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습니다. 자연만물과 양심을 통해서 그는 하나님의 존재를 명백히 인지할 수 있습니다. 죄인은 절대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 인생은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저런 죄를 살펴보지 않더라도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사람들이 어떠한가를 생각하면, 온 세상이 정죄 받아야 마땅하며, 비록 환난이 지나쳐 보일지라도 아무도 하나님께 따질 수 없습니다……우리 양심이 우리를 쳐 증거한다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는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지켜야 하는 순서를 보십시오. 각자 먼저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자세히 자기의 악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자기의 악에 대해서 알 수 있을 만큼 자세히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분석해 보았습니까? 자, 우리를 재판하는 양심이 있습니다. 그 ‘재판장’도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 재판장은 족히 두려워할 만한 존재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죽을 인생들보다 하나님께서는 훨씬 더 분명히 보시기 않습니까? 내 양심이 천 개의 죄를 쳐서 증거한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살피시면 훨씬 더 많은 죄가 드러날 것입니다.[John Calvin, Sermons from Job, 서문강 역, 『칼빈의 욥기 강해: 욥과 하나님』 (서울: 지평서원, 2008), 119, 130.]
자기 처지를 명확히 파악한 욥은 자신에게 중재자가 없음을 깨닫습니다. 33절에 나온 ‘판결자’는 ‘중재자’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하나님의 기준에 이르지 못하는 실존적 문제는 비단 욥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선 중재자가 필요합니다. 중재자는 타락한 죄인을 구원할 수 있는 온전히 의로운 사람인 동시에 하나님의 저주를 감당할 수 있는 신적존재이어야 합니다. 욥이 대망했던 중재자는 때가 차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참 하나님이시자 참 사람인 예수님만이 자비로운 중보자요, 실패 없는 중재자가 되십니다. 그러니 그분을 믿고 신뢰합시다. 내 힘으로 벽돌을 굽고 타르를 발라 바벨탑을 쌓으려는 일체의 노력을 거부합시다. 우리가 이 노력을 그치지 않으면 주께서 친히 공사를 멈추게 하실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단단한 동아줄을 붙듭시다. 야곱이 보았던 사닥다리, 인생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중보자 예수님만이 죄인을 하나님 앞에 의롭게 세워줍니다.
“우리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도 없구나”`(욥기 9:33)
'기본카테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서 11:7-10 (강해110, 2017년 4월 4일 화요 새벽 기도회, 찬송: 내게 있는 향유 옥합) (0) | 2018.04.07 |
---|---|
시편 12:1-8 (2016년 4월 4일 월요 새벽 설교) (0) | 2018.04.07 |
1909년 4월 4일, 선한 사마리아인 포사이스 선교사 (0) | 2018.04.07 |
4월 7일 맥체인식 성경읽기 [레위기 10장, 시편 11-12편, 잠언 25장, 데살로니가전서 4장] - 새번역 (0) | 2018.04.07 |
4월 7일 스펄전 아침 묵상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며.” [시편 4:2] (0) | 2018.04.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