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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11
"I am poured out like water, and all my bones are out of joint" (Psalm 22: 14).
Did earth or heaven ever behold a sadder spectacle of woe? In soul and body, our Lord felt Himself to be weak as water poured on the ground. The placing of the cross in its socket had shaken Him with great violence, had strained all the ligaments, had pained every nerve, and more or less dislocated all His bones. Burdened with His own weight, the Sufferer felt the strain increasing every moment of those six long hours. His sense of faintness and general weakness was overpowering, while to His own consciousness He became nothing but a mass of misery and swooning sickness. How faint He must have been when He saw the dread vision of the wrath of God and felt it in His own soul! To us, sensations such as our Lord endured would have been insupportable, and kind unconsciousness would have come to our rescue. But in His case, He was wounded and felt the sword. He drained the cup and tasted every drop. As we kneel before our now ascended Savior's throne, let us remember well the way by which He prepared it as a throne of grace for us. Let us, in spirit, drink of His cup that we may be strengthened for our hour of heaviness whenever it may come.
4월 11일
제목 : 나는 물같이
요절 :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시22:14)
땅이나 하늘이 일찍이 이 보다 더 비통(悲痛) 스러운 광경을 본적이 있었습니까? 주님은 그의 영혼과 몸이다 녹아서 물이 되어 땅위에 쏟아지는 것같이 약해짐을 느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기둥을 바닥 바위틈에 꽂아 세울 때 예수님의 몸은 격열하게 흔들렸습니다. 모든 몸의 인대(靭帶)가 조여 들고(당겨지고), 모든 신경이 고통스러웠고, 모든 뼈들이 다소간 다 어그러졌습니다. 점점 자신의 몸의 무게가 무거워져서 고난의 주님은 십자가에 달린 긴 여섯시간 동안 매 순간 더해가는 고통(스트레인)을 느끼셔야 했습니다. 그의 몸은 감각의 쇠진(衰盡)과 전반적인 약화증상이 압도했습니다. 반면 그의 의식에 있어서는 그는 다만 비참과 고통의 덩어리가 되고, 죽어가는 아픔(병)자체가 되었습니다.(즉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함께 극에 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의 환상(vision)을 보시고 그것을 그 자신의 영혼으로 느꼈을 때 얼마나 혼절(昏絶)할 상황에 놓였겠습니까? 우리에게 주님이 견디셨던 그런 감각적 상황이 왔다면 우리는 견딜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인사불성(또는 무의식)이 친절한 구조가 될 것입니다.(역자주1)
그러나 예수님의 경우에는, 예수님은 상처를 입으시고 또 칼의 아픔을 의식 속에서 직접 느끼셨습니다.(즉 무의식 상태에서 고통을 느끼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그 고난의 쓴 잔을 비우셨고, 그 잔의 마지막 방울까지다 맛 보셨습니다. 지금은 승천하신 구세주의 보좌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꿀 때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한 은혜의 보좌를 준비하시기 위하여 걸었던 그 길을 기억합니다.(즉 주님은 그 자신의 고난의 길에 의하여 우리를 위한 은혜의 보좌를 준비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힘든 시간(무거운 마음의 때)이 올 때마다, 그 시간에 강건해지기 위하여 영으로(마음으로) 주님의 잔을 마십시다.
주1, 우리가 만일 예수님이 겪으신 그 엄청난 고통을 받게 되면 견딜 수 없어서 차라리 무의식에 빠져서 고통을 면하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즉 무의식이 우리의 고마운 구조가 된다는 것이다.
"I am poured out like water, and all my bones are out of joint" (Psalm 22: 14).
Did earth or heaven ever behold a sadder spectacle of woe? In soul and body, our Lord felt Himself to be weak as water poured on the ground. The placing of the cross in its socket had shaken Him with great violence, had strained all the ligaments, had pained every nerve, and more or less dislocated all His bones. Burdened with His own weight, the Sufferer felt the strain increasing every moment of those six long hours. His sense of faintness and general weakness was overpowering, while to His own consciousness He became nothing but a mass of misery and swooning sickness. How faint He must have been when He saw the dread vision of the wrath of God and felt it in His own soul! To us, sensations such as our Lord endured would have been insupportable, and kind unconsciousness would have come to our rescue. But in His case, He was wounded and felt the sword. He drained the cup and tasted every drop. As we kneel before our now ascended Savior's throne, let us remember well the way by which He prepared it as a throne of grace for us. Let us, in spirit, drink of His cup that we may be strengthened for our hour of heaviness whenever it may come.
4월 11일
제목 : 나는 물같이
요절 :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시22:14)
땅이나 하늘이 일찍이 이 보다 더 비통(悲痛) 스러운 광경을 본적이 있었습니까? 주님은 그의 영혼과 몸이다 녹아서 물이 되어 땅위에 쏟아지는 것같이 약해짐을 느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기둥을 바닥 바위틈에 꽂아 세울 때 예수님의 몸은 격열하게 흔들렸습니다. 모든 몸의 인대(靭帶)가 조여 들고(당겨지고), 모든 신경이 고통스러웠고, 모든 뼈들이 다소간 다 어그러졌습니다. 점점 자신의 몸의 무게가 무거워져서 고난의 주님은 십자가에 달린 긴 여섯시간 동안 매 순간 더해가는 고통(스트레인)을 느끼셔야 했습니다. 그의 몸은 감각의 쇠진(衰盡)과 전반적인 약화증상이 압도했습니다. 반면 그의 의식에 있어서는 그는 다만 비참과 고통의 덩어리가 되고, 죽어가는 아픔(병)자체가 되었습니다.(즉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함께 극에 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의 환상(vision)을 보시고 그것을 그 자신의 영혼으로 느꼈을 때 얼마나 혼절(昏絶)할 상황에 놓였겠습니까? 우리에게 주님이 견디셨던 그런 감각적 상황이 왔다면 우리는 견딜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인사불성(또는 무의식)이 친절한 구조가 될 것입니다.(역자주1)
그러나 예수님의 경우에는, 예수님은 상처를 입으시고 또 칼의 아픔을 의식 속에서 직접 느끼셨습니다.(즉 무의식 상태에서 고통을 느끼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그 고난의 쓴 잔을 비우셨고, 그 잔의 마지막 방울까지다 맛 보셨습니다. 지금은 승천하신 구세주의 보좌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꿀 때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한 은혜의 보좌를 준비하시기 위하여 걸었던 그 길을 기억합니다.(즉 주님은 그 자신의 고난의 길에 의하여 우리를 위한 은혜의 보좌를 준비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힘든 시간(무거운 마음의 때)이 올 때마다, 그 시간에 강건해지기 위하여 영으로(마음으로) 주님의 잔을 마십시다.
주1, 우리가 만일 예수님이 겪으신 그 엄청난 고통을 받게 되면 견딜 수 없어서 차라리 무의식에 빠져서 고통을 면하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즉 무의식이 우리의 고마운 구조가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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