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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1일 욥기 16장 “하나님 앞에서 울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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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1일 욥기 16장 “하나님 앞에서 울 수 있다면”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고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니”(욥기 16:20)


욥은 친구에게서 위로를 기대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울고 있습니다. 자녀를 잃고 재산을 잃었을 때 느꼈던 아픔과는 다른 고통이 욥을 억누릅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죽어버리라는 말을 아내로부터 들었을 때 욥은 울지 않았습니다. 기와 조각으로 몸을 긁고 있을 때에도 그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의 조롱에 욥은 울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눈물을 감추지 않습니다. 거듭한 하나님의 사람에게 눈물은 친구요 동반자입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편 6:6)


욥은 지금 눈물로 음식 삼고 있습니다. 위로자가 적대자로 바뀐 상황이 서러워서 우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의 눈물은 하나님을 향한 것입니다.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기에 욥은 사람들을 향해서는 입을 닫았습니다. 대신 주님을 향해 눈물샘을 열었습니다. 그는 주께서 자신의 누액(淚液)을 병에 담아두실 것을 믿었습니다. 바울의 사역은 눈물의 섬김이었습니다.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행 20:19). 사도가 밤낮 쉬지 않고 각 사람을 훈계할 때 눈물이 수반되었던 것을 잊지 맙시다(행 20:31). 바울의 눈물은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흘리는 안타까움의 농축액이었습니다. 오! 풀리지 않는 고난 속에서, 변화되지 않는 영혼 앞에서 무력한 신자가 하나님을 향하고 울 수 있다면 그는 복된 자입니다. 욥처럼 울부짖는 형제여,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눈물지으셨던 구주 예수님을 기억하며 인내합시다. 눈물 골짜기를 걸을지라도, 주께서 함께 하시니 찬송하며 갑시다.

눈물은 부정적 이미지만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우리 모두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 눈물의 소중함을 이미 경험했습니다. 눈물은 그 자체의 고유한 가치과 무게를 지니고 있습니다. 아무리 웃음이 우리에게 매력적이고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웃음이 눈물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눈물의 고유한 영역이 있습니다. 만일 우는 것은 무조건 저주요, 슬픔은 무조건 부정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인생은 중요한 것 하나가 빠져 버린 인생입니다. 아랍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햇빛만 쏟아지는 곳은 사막이 된다.” 중동지역은 비가 없는 곳이기 때문에 사방을 둘러 봐도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막 뿐입니다……“모든 햇살은 사막을 만든다.” 이것은 인생에 있어서도 진리입니다. 비가 와야 합니다. 검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비가 쏟아질 때 생명의 환희가 일어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눈물이 없는 인생은 사막과 같습니다. 눈물이 없으면 웃음 그 자체도 하나의 광대노릇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을 깨달은 사람이 인생의 의미를 아는 사람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눈물과 애통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입니다. 눈물 골짜기를 통과하지 아니한 신앙은 하나의 값싼 장식품에 불과합니다. 예수 믿고 나서 웃기만 했다면 아직은 값싼 신앙입니다. 예수 믿고 나서 하나님 앞에서 진지하게 울어 본 그 사람이 차원있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애통이 우리의 신앙을 본질로 향하게 만듭니다. 눈물이 우리의 신앙을 본질로 인도합니다. 눈물이 고인 눈에 십자가의 주님이 보입니다. 젖은 눈에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애통하는 심령 속에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발걸음 소리가 들립니다.[옥한흠, 『빈마음 가득한 행복』 (서울: 국제제자훈련원, 2001), 5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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