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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2일 욥기 17장 “영적 침체를 허락하시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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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2일 욥기 17장 “영적 침체를 허락하시는 이유”

“나의 날이 지나갔고 내 계획, 내 마음의 소원이 다 끊어졌구나”(욥기 17:11)

회심의 순간을 분명히 기억할 수 있는 신자라 할지라도, 욥과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매몰차게 얼굴을 돌리신 것만 같은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경험을 갖게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고통의 시간을 영적침체라 부릅니다. 회개와 순종의 삶을 살아 왔습니다. 무엇이든 양심에 거리끼는 것은 기도와 성경연구를 통해 그때그때 해결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유를 알 수 없는 암연(黯然)의 순간이 찾아와 영혼을 괴롭게 합니다. 하나님과의 친밀감은 괴리감으로 변했습니다. 욥이 고백한 것처럼, 마음의 소원이 모두 끊어져 버린 것입니다. 극심한 영적 침체는 가장 열렬히 그리스도를 사랑했던 영적거인도 넘어뜨립니다. 신자의 영혼에도 이런 위기가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맙시다. 푸치우스(1589-1676)는 영혼의 어두운 밤을 걷는 형제들을 위해 귀하게 봉사한 네덜란드 신학자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영적 침체를 허락하시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신자들로 하여금 영적 침체나 영적 버림받음을 경험케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신자들이 시험을 통해 자신을 보다 제대로 알고, 주변 사람들도 그를 올바로 이해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향한 열망이 더욱더 커지도록 하고, 이로 인해 숨겨진 죄가 드러나며 언젠가 저지를지도 모르는 죄를 예방하기도 하신다. 신자들은 영적 침체를 통해 양심을 민감하게 유지하고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을 배운다. 더 나아가 자신의 영혼을 비우고, 이를 통해 세상의 것을 버리고 떠나는 나그네 삶도 마다하지 않게 되며, 세상에 속한 위로와 기쁨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이 흘리는 눈물을 위로삼아 사는 법을 배운다. 참된 위로자께서 어디로 숨어버린 것만 같은 상황에서도 그분의 섬세한 위로를 맛보는 것이다.[Gisbertus Voetius, Spiritual Depression, 황영식 역, 『영적 침체』 (서울: 누가, 2011), 75.]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보지 않은 사람은 햇빛 찬란한 초원이 얼마나 복된 곳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이 터널을 통과해 본 그리스도인은 시편 126편 6절을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할 수 있습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영적 침체를 허락하시는 하나님은 선하고 자비로운 분이십니다. 주님의 커리큘럼에 대해 불평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맙시다. 죽음의 십자가가 부활의 빈 무덤으로 종결되듯이 이 어두움의 시간도 소망으로 결론지어질 것을 믿게 하소서. 내 맘의 주여, 소망이 되어 주소서.

영적 침체의 궁극적인 목적은 택자들을 구원하시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자비와 지혜를 드러내시기 위함이다. 연약한 자들을 구원으로 이끌어 가시는 경이로운 과정을 통해……택자들의 절망까지도 사용하시는 신비한 방법을 가지고 그들을 지옥에서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나타나는 것이다. 연인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다툼이 더 깊은 사랑을 가져오듯이, 우리 주 하나님께서 독이나 상처로부터 가장 유익한 양분을 만들어 내신다. 심지어 지옥의 고통 같은 처절한 아픔을 통해서도 가장 좋은 치료제를 만들어내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영혼의 치료사 되시는 분께서 진흙을 눈에 발라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하시며, 그의 의의 심연에는 자비가 있고 자비의 심연에는 의가 자리 잡고 있음을 드러내신다.[『영적 침체』, 8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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