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로 이기셨느니라(골로새서2장)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골로새서 2:2)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향한 분명한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애매한 소망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세속적인 소망도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교인들이 부자가 되기를 원한다거나, 건강해지는 것만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사도는 골로새 교회의 지체들이 하나님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저 들어서 아는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체험적인 앎과 깨달음이 있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러한 지식은 성령 하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습니다.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 믿음은 지식과 동의, 신뢰라는 요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참된 믿음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포함되어 있음을 명확히 보여 줍니다.
21문 : 참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답 : 참된 믿음은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모든 것을 참된 것으로 여기는 확실한 지식일 뿐 아니라, 성령님께서 복음으로써 내 마음 속에 일으키신 굳은 신뢰입니다. 곧 순전히 은혜로,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에 하나님께서 죄 사함과 영원한 의로움과 구원을 다른 사람뿐 아니라 나에게도 주심을 믿는 것입니다.
부활주일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가 이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지나치게 육체적 고통의 관점에서만 살펴볼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몸으로 처절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신학적 의미가 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을 예표하는 구약의 많은 말씀들은 희생제물인 짐승의 죽음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할 뿐입니다. “너는 회막 문 여호와 앞에서 그 송아지를 잡고”(출 29:11)처럼 말입니다. 십자가와 빈 무덤은 확실한 이해를 필요로 합니다. 한번 눈물 흘리고 말 사건이 아닙니다. 그 깊은 뜻과 풍성한 교훈에 대해, 우리는 회심 이후에도 평생에 걸쳐 배워야 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그분과 연합된 신자와 연관된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골로새서 2:12)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살았습니다. 그분의 죽음 까닭에 죄 용서를 받게 되었고, 그분의 부활 까닭에 의롭다 여김을 받게 되었습니다(롬 4:25).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In Christ Jesus) 우리는 이 특권을 향유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죄가 빚쟁이마냥 우리를 닦달하지 않습니다. 신자는 쓰레기통을 뒤지는 거지처럼, 죄 된 과거에 더 이상 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왕국의 품격있는 상속자인 왕자와 공주로서의 새 삶을 누립니다.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험한 세상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시스템을 바꾸고, 조직을 정비하며, 새로운 법안을 만드는 것으로는 참된 변화를 일으킬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는 실존에 직면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시고, 감당할 수 없는 복된 선물을 주시는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을 펴고 예수님에 대해 알아가십시오. 죄책이 물러가고 진정한 자유가 옵니다. 예수님을 신뢰하십시오. 부활의 능력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기본카테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도서 2장 (새번역/개역개정, 자비교회 성경통독) (0) | 2018.04.15 |
---|---|
레위기 19장 (새번역/개역개정, 자비교회 성경통독) (0) | 2018.04.15 |
날마다 부끄러워 함 - 리처드 얼라인(Richard Alleine, 1610/11–1681) (0) | 2018.04.14 |
존 칼빈, 『기독교 강요』2.8.25 [쓸데없는 맹세] (0) | 2018.04.14 |
1908년 4월 14일, 고찬익(高燦益, 1857-1908) 별세 (0) | 2018.0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