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일 욥기 25장 “감동 없는 설득”
“그런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여자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욥기 25:4)
수아 사람 빌닷은 친구라기보다는 잔인한 상담가입니다. 내담자의 이야기만 귀 기울여 잘 들어주기만 해도 치료의 절반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빌닷은 욥의 이야기를 견뎌내지 못합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신앙 이야기는 욥의 상처난 가슴을 후벼 팝니다.
“하나님은 주권과 위엄을 가지셨고 높은 곳에서 화평을 베푸시느니라”(욥기 25:2)
내담자보다 말이 많은 상담가 빌닷은 신학 교과서에 나오는 용어를 써 가며 욥을 가르칩니다. 하지만 감동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설득이 되어질리 만무합니다. 목회적 따뜻함이 없는 상태에서 교리를 가르치는 일이 어려운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에 나온 성도들은 대부분 상처받은 영혼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죄의 지적과 하나님의 진노와 더불어 복음의 유익과 유효한 은혜가 설교되지 않는다면 영혼들은 무거운 짐을 진 채 세상으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빌닷은 잔인한 설교자입니다. 욥의 상태를 잘 알고 있는 그는 표적설교의 대가(大家)입니다.
“내 살에는 구더기와 흙 덩이가 의복처럼 입혀졌고 내 피부는 굳어졌다가 터지는구나”(욥기 7:5)
빌닷은 욥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난 종기에 기생(寄生)하는 구더기를 언급합니다. 위로는커녕 상처에 식초를 쏟아 붓는 격입니다. 욥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지도 못하고, 깨끗하지도 않은 구더기와 같은 피조물이라는 논리입니다. 맞는 말이되, 사랑 없는 말이요,욥의 상황에 맞지도 않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faith working through love)”을 기억합시다(갈 5:6). 사랑을 통해서 전파되지 않는 진리와 권면은 역사하는 힘이 없거나 적습니다. 당신이라면 욥과 같은 형제에게 어떤 말을 건네겠습니까?
“보라 그의 눈에는 달이라도 빛을 발하지 못하고 별도 빛나지 못하거든 하물며 구더기 같은 사람, 벌레 같은 인생이랴”(욥기 25:5-6)
어머니의 사랑에 감동된 사람은 평생을 효자와 효녀로 삽니다. 어머니의 논리에 설득된 효자, 효녀는 드뭅니다. 밤새워 죄를 즐기다가 새벽에 집에 돌아와도 여전히 불을 켜놓고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니. 그 사랑에 감동된 자는 모친의 뜻에 기쁘게 설득되기 마련입니다. 많이 배우지 못한 어머니는 유창한 말과 깊은 학식으로 나를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내가 아플 때 침묵 속에 한결같음으로, 내가 방황할 때 지속적인 격려로 함께 해 주셨습니다. 설득을 넘어선 감동은 나를 변화시켰습니다.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자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누구도 설득으로만 거듭나지 않습니다. 변증은 신자의 믿음을 견고케 하고, 불신자의 장막을 걷어내는 데 유용하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는 못합니다. 주님은 강압하시지 않고, 부드럽게 우리를 몰아가셨습니다.정서의 감동을 수반한 말씀의 이해는 우리 의지의 결정을 그리스도께 향하도록 하였습니다. 감동이 없는 설득은 변화를 일으키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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