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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칼빈, 『기독교 강요』2.8.34-37 주일의 영적 준수, 제5계명이 포괄하는 범위, 이 계명의 세 가지 부분, 이 계명에 덧붙여진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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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성일의 영적 준수 그러나 고대인들이 우리가 말하는 주일로 안식일을 대신한 데는 신중한 고려가 없지 않았다. 고대의 안식일이 대표한 저 진정한 안식은 주의 부활에서 그 목적이 성취되었다. 그러므로 그림자를 끝낸 그 날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 그림자였던 의식을 집착하지 말라고 하는 경고가 된다. 나는 일곱이라는 수를 고집해서 교회를 그것에 예속시키는 것도 아니다. 또 다른 날에 엄숙히 모이는 교회들도 미신만 없으면 나는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규율과 질서를 유지하는 것만을 생각할 때에, 거기는 미신이 없다고 할 것이다. 요약하면, 유대인들에게 진리가 상징으로 전달된 것같이, 우리에게는 그림자 없이 진리가 제시된다.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일을 쉬는 영원한 안식을 평생 명상해서, 주께서 성령으로 우리 안에서 역사 하시게 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각각 개인적으로 틈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의 활동을 부지런히 그리고 경건하게 명상해야 한다. 또 말씀을 들으며 성례전을 집행하며 공중기도를 드리기 위해서 교회가 제정한 합법적 질서를 일제히 지켜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수하에 있는 사람들을 가혹하게 압박해서는 안 된다.818) 이리하여 거짓 선지자들의 너절한 이야기는 사라진다. 그들은 수 백년 전에 유대교적 견해를 사람들에게 감염시켰다. 이 계명의 의식적 부분만이(그들의 소위 제 칠일의 "지정"만이) 폐지된 것이고 도덕적 부분은, 즉, 이레 가운데서 하루를 정하는 것은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819) 그러나 이것은 유대인들을 비난하는 의미로 날을 변경했을 뿐이고, 그 날을 거룩하다고 하는 생각은 여전하다. 유대인들이 생각한 것과 같이, 그날의 신비성에 중요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이런 사상을 가르침으로써 이익을 얻는다. 자기들의 교회 규정을 고집하는 자들의 미신은 유대인 이상이요 세 갑절이나 더 유치하고 육적인 안식일 미신이다.820) 따라서 이사야가 당시의 사람들을 책망한 말은 현대의 그들에게도 그대로 해당된다(사 1:13-15, 58:13). 그러나 우리가 특히 견지해야 하는 일반적 교훈은 이것이다. 즉, 우리들 사이에서 경건이 소멸하거나 쇠퇴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우리는 성회에 부지런히 출석하며 하나님께 대한 경배를 도울 수 있는 외면적 보조수단들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째 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 35. 이 계명의 폭넓은 범주 이 계명의 목적은, 주 하나님께서 자기의 경륜이821) 유지되는 것을 기뻐하시므로, 우리는 그가 제정하신 상하 등급을 거역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점은, 하나님이 우리 위에 세우신 사람들을 우리는 존경하며 경의와 순종과 감사로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멸시, 고집, 배은망덕 등으로 그들의 존엄성을 손상하는 것을 금지한다. "공경한다"는 말은 성경에서 의미가 넓다. 그래서 사도가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라"고 할 때에(딤전 5:17), 그는 그들이 받아야 할 경의를 의미할 뿐 아니라, 그들의 봉사에 대해서 당연히 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웃어른을 인정하라는 이 교훈에 대해서 타락한 인간성은 강경히 반대한다. 인간성은 높은 자리를 갈망하는 생각이 가득해서 아랫자리에 서는 것이 못마땅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윗자리 가운데서도 그 본질상 가장 인자하고 남의 시기도 가장 받지 않는 종류를 예로 드신다. 이렇게 하시면 우리의 마음을 더 쉽게 부드럽게 만들어 복종하는 습성이 생기도록 인도하실 수 있겠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가장 용인하기 쉬운 복종으로 우리를 훈련하셔서 점점 모든 합법적 복종이 습성화하게 하신다. 복종하는 이유는 모두 같기 때문이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상위에 두신 사람들에게 필요하다면 자기의 이름을 나눠주셔서 그 위치를 유지하게 하신다. "아버지", "하나님", "주" 등의 칭호는 오래 동안 하나님에게만 속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런 칭호 중의 어느 것을 들든지 반드시 우리는 곧 그의 존엄성을 연상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의 이름을 나눠주시는 사람들을 자기의 광채의 불꽃으로 빛나게 하셔서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정도에 따라 눈에 띄게 하신다. 그래서 우리의 아버지인 사람은 이유 없이 거룩한 칭호를 가진 것이 아니므로, 우리는 어떤 신적(神的)인 것을 그에게서 인정해야 한다. "왕"이나 "주"가 되는 사람도 하나님의 영예에 어느 정도로 참여한다. 36. 명령 그렇기 때문에 주께서 여기서 한 일반적 원칙을 세우셨다는 것을 우리는 의심해서는 안 된다. 즉, 주의 임명으로 어떤 사람이 우리 위에 세워진 것을 알면, 우리는 그에게 경외와 순종과 감사를 드리며, 그밖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의무를 다해야 한다. 우리의 웃어른이 이런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 어떤 사람이든지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로 그 지위에 있게 된 것이며, 이 일이 우리가 그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세상에 낳아준 우리의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백히 말씀하신다. 자연 자체도 이 일을 우리에게 가르칠 것이다. 반항이나 고집으로 부모의 권위를 무시하는 자들은 사람이 아니라 기괴한 동물이다. 그래서 주께서는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 사형에 처하라고 명령하신다. 자기를 낳아 준 분들의 노고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인생의 혜택을 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이 공경에 경의와 복종과 감사의 세 부분이 있다고 우리가 말한 것은 율법에 첨가된 여러 말씀을 보아도 분명히 바르다. 주께서는 부모를 저주하는 자는 죽이라고 명령하심으로써(출 21:17, 레 20:9, 잠 20:20) 처음 부분인 경의를 확인하신다. 즉, 멸시와 박대를 벌하신다. 또 순종하지 않고 반항하는 자녀에 대해서 사형을 명령하심으로써(신 21:18-21) 둘째 부분인 순종을 확인하신다. 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 15장에서 부모를 후대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이라고 하신 말씀은(4-6절) 존경의 셋째 부분인 감사에 관한 것이다. 바울은 이 계명을 언급할 때마다 복종을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한다(엡 6:1-3, 골 3:20). 37. 약속 권면하는 의미로 약속이 첨가되었다. 이것은 여기서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복종을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가를 보다 더 잘 알리시려는 뜻이다. 바울이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째 계명이라고 한 의도는(엡 6:2) 이 말을 바늘로 삼아 무감각한 우리를 찌르려는 것이다. 이미 첫째 판에 주어진 약속들은 어느 한 계명에 국한되지 않고 율법 전체에 관련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계명을 다음과 같이 해석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약속하신 땅에 대해서 특히 말씀하신다. 땅을 가진 것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보증한다면, 하나님이 자기의 은혜를 오랫동안 받아 즐길 수 있는 장수함을 약속하심으로써 자기의 은혜를 증명하시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계명의 뜻은 "부모를 공경하여 나의 호의의 보증으로서 너희의소유가 될 그 땅에서 장수하면서 그 소유를 즐기라"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신자들에게는 지구 전체가 축복 하에 있으므로, 현세 생활을 하나님의 한 축복으로 보는 것이 옳다. 따라서 장수도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한 증거라는 의미에서 이 약속은 우리에게도 관계가 있다. 우리에게나 고대 유대인들에게나 장수는 그 자체에 축복을 내포했다고는 약속하시지 않았지만, 장수는 경건자에게 하나님의 친절을 알리는 한 관습적 상징이다. 그러므로 부모에게 복종하는 아들이 미성년으로서 세상을 떠나는 일이 자주 있더라도, 주께서는 천 평밖에 약속하시지 않은 사람에게 십만 평이나 주시듯이, 요지부동한 자세로 끝까지 약속을 실현하신다. 요컨대, 장수는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의미에서 우리는 장수하리라는 약속을 받았으며, 장수는 하나님의 호의를 증거하는 때에만 축복이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의 종들에 대해서 자기의 호의를 죽음을 통해서 훨씬 더 풍부하고 확실하게 증언하시며, 실지로 증명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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