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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칼빈, 『기독교 강요』2.8.43-46 결혼의 중요성, 정숙함과 순결, [제8계명]이 계명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 이 계명의 올바른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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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이 계명에 관련지은 결혼

 

비록 대단한 열의와 노력으로 전심전력할지라도 모든 사람이 독신생활에서 정절을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주께서 자기의 사업에 곧 쓰실 수 있기 위해서 정해진 일부 사람들에게만 주시는 특별 은총이라는 것을 우리는 주의 공개 선언에서 배웠다. 따라서 우리 능력의 정도에 합당한 생활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정해 주신 우리의 본성에 항거하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 주께서는 간음을 금하신다. 따라서 순결과 정조를 요구하신다. 순결과 정조를 보존하는 길은 다만 하나뿐이다. 각각 자기의 표준으로 자기를 측정하는 것이다.825) 아무도 결혼을 무익한 것이나 무용한 것이라고 경솔하게 멸시하지 말라. 처가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독신 생활을 동경하지 말라. 또 동시에 독신 생활에서는 육신의 안식과 편리를 구하지 말고, 결혼 생활의 구속이 없으므로 경건의 모든 의무를 더욱 민첩히 다할 수 있도록 대비하라. 그리고 이 축복을 얼마 동안만 받는 사람이 많으므로, 독신을 계속하기에 자기가 적합한 동안만 결혼을 단념하라. 정욕을 억제할 힘이 없어지면, 주께서 이제는 결혼의 필요성을 자기에게 부과하신 것을 인정하라. 사도의 명령은 이 점을 증명한다. 음행을 피하기 위해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고 하며(고전 7:2),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주 안에서 혼인하라"고 한다(고전 7:9). 사도가 말하는 뜻은 첫째로, 남자의 대부분은 무절제의 죄를 짓는다는 것이며, 둘째로, 그런 사람들은 불결과 싸우는 유일한 대책에서 피난처를 구하되 한 사람도 예외가 없도록 명령한다. 그러므로 무절제한 자들이 이런 방법으로 자기의 약점을 고치지 않는다면, 그들은 사도의 이 명령을 지키지 않는 점에서도 죄를 짓는다. 여자와 접촉하지 않는 사람은 그것을 자랑하지 말라. 마음속에서 정욕이 타오르는 사항이 무절제하다는 비난을 멸할 수는 없다. 바울은 "마음의 순결과 몸의 정조"를 합해서 정절이라고 정의한다. "시집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고전 7:34) 이와 같이 사도는 위에서 언급한 교훈을 도리상 주장하면서, 창기와 합하여 몸을 더럽히기보다(참조, 고전 6:15이하) 처를 두는 것이 낫다고 할 뿐 아니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고 한다(고전 7:9).

 

44. 정숙과 정조

 

결혼한 남녀가 자기들의 결합을 하나님이 축복하신다고 인정한다면, 동시에 그들은 정욕을 억제하지 않고 방탕하게 되어 결혼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는 권면도 받는 것이다. 결혼은 존귀하여 무절제의 추악을 덮지만, 무절제를 격발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결혼한 남녀는 무슨 짓을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신중히 대하며, 혼인의 존귀상과 절제에 합당하지 않은 일은 전혀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 이와 같이 주 안에서 맺어진 결혼 생활에 절도와 정숙을 회복해서 극단적 음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암브로시우스는 이 방탕을 힐난하여 엄격하고 당연한 비판을 내렸다. , 결혼 생활에서 수치나 체면을 개의치 않는 사람은 자기 처를 간음하는 자라고 불렀다.826)

 

마지막으로, 여기서 음행을 정죄하시는 입법자는 누구신가를 우리는 고려해야 한다. 그는 권리상 우리를 완전히 소유하셔야 하기 때문에, 우리의 영혼과 정신과 육체가 완전하기를 요구하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음행을 금하시는 동시에, 우리가 문란한 의복과 음탕한 몸짓과 추악한 말로 다른 사람의 정절을 유혹하는 것도 허락하시지 않는다. 지나치게 방자하고 사치한 옷을 입은 청년을 향해서 아켈라우스가 그의 어느 지체가 불결한가가 문제가 아니라고 한 말에는827) 적절한 점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영혼과 육체의 어떤 부분에 불결이 나타나든 간에, 그것을 일체 싫어하시는 하나님을 상대로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정숙을 권장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서, 아무 의심도 없어야 한다. 주께서 우리에게 정숙을 요구하신다면, 거기 반대되는 것은 일체 정죄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순종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마음속에서 악한 음욕이 타오르는 것이나, 눈이 타락한 욕망으로 달리는 것이나, 몸에 음탕한 장식을 하는 것이나, 추잡한 말로 생각을 더럽히는 것이나, 욕망이 무절제한 생각을 타오르게 하는 것을 일체 허락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런 종류의 죄악은 모두 정조의 순결을 더럽히는 오점과 같기 때문이다.

 

여덟째 계명

 

"도적질하지 말지니라"(20:15)

 

45. 일반적 해석

 

이 계명의 목적은, 하나님이 불의를 미워하시므로, 우리는 각 사람의 소유를 그에게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13:7).828) 요약하면, 이 계명은 다른 사람들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고 금지하며, 결과적으로 모든 사람이 각각 자기의 소유를 보존하도록 충실히 애써 노력하라고 명령한다.

 

사람의 소유는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만물의 최고의 주인이신 분이 분배해 주셨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악한 계략으로 남의 물건을 빼앗는다면 그것은 반드시 사기 수단으로 하나님의 경륜을 배제하는 것이 된다. 그런데 도둑질도 여러 가지다. 폭력을 쓰는 노골적인 강도 행위, 기만수단으로 남의 소유를 집어 가는 흉악한 사기 행위, 외관상 법적인 수단으로 남의 것을 빼앗는 더욱 음흉하고 간교한 것 등이 있다. 아첨하며 선물로 받는 체하면서 속여 빼앗는 것도 있다.

 

도둑질의 종류는 자세히 말하지 않겠다. 이웃의 소유나 돈을 우리가 취득하는 방법은 그것이 진지한 애정을 떠나서 속이거나 해하겠다는 욕망이 될 때에 모두 도둑질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법적 절차를 통해서 남의 재산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심판은 변하지 않는다. 간교한 사람이 복잡한 사기 수단으로 단순한 사람 앞에 올무를 놓아 결국 끌어넣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사기 수단을 보신다. 세력 있는 자들이 약한 사람들을 법으로 압박하며 꺾어 버릴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냉혹한 법을 보신다. 간악한 자가 부주의한 사람들을 미끼로 호려 낚시에 걸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간교한 호림을 보신다. 이 모든 일은 인간의 심판을 받지 않으며 눈에 띄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불의는 돈이나 상품이나 토지에 관해서 있을 뿐만 아니라, 각 사람의 권리까지도 침범한다. 우리가 이웃에 대해 지고 있는 의무를 거부할 때에, 우리는 그들의 재산을 횡령하는 것이다.829) 만약 게으른 관리인이 주인의 재산을 소비하며 주인의 살림을 돌보지 않을 때, 맡은 재산을 부당하게 소비하거나 함부로 허비할 때, 하인이 주인을 조롱할 때, 주인의 비밀을 폭로할 때, 주인의 생명이나 재산에 대해서 배신행위를 할 때, 그러나 반대로 주인이 집안사람들을 난폭하게 괴롭힐 때, 이 모든 경우는 하나님 보시기에 도둑질인 것이다. 자기가 소명받은 책임에 따라 남에게 해야 할 일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남의 것을 주지 않고 자기가 횡령하고 차지하기 때문이다.

 

46. 이 계명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염려하도록 만든다

 

그러면 우리가 자기의 처지로 만족하며 정직하고 합법적인 이익만을 얻는 데 힘쓴다면, 우리는 이 계명을 바르게 순종하는 것이다. 또 불공평한 짓으로 치부하려 하지 않으며, 이웃의 재산을 빼앗아 우리 재산을 긁어모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또 잔인한 수단으로 다른 사람들의 피를 뽑아 거부가 되려고 애쓰지 않는다면, 수단의 선악을 묻지 않고 아무데서나 미친 듯이 긁어모아 우리의 탐욕을 만족시키거나 방탕 생활에 낭비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 때에 우리는 이 계명을 바르게 지키는 것이다. 우리가 항상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지혜와 조력으로 힘자라는 데까지 모든 사람이 자기 것을 가지고 있도록 진실히 돕는 것이다. 그러나 신용이 없고 부정직한 사람들을 상대로 해야 할 때에는, 그들과 싸우기보다는 차라리 우리 것을 내줄 생각을 하라. 그뿐만 아니라, 사정이 어려운 사람들의 곤란을 나누며, 우리의 풍성한 것으로 그들의 곤궁을 도와야 한다.

 

끝으로, 우리는 각각 어느 정도까지 남에게 대한 의무가 있는가를 알아서 성실히 빚을 갚아야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백성들은 지배자들을 존경하며, 그들의 정치를 참고 견디며, 그들의 법과 명령에 복종하며, 하나님의 자비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거절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13:1이하, 벧전 2:13이하, 3:1). 또 지배자들은 일반 백성을 돌보며 공공안녕을 유지하며 선한 사람들을 보호하며, 악인들을 처벌해야 한다. 만사를 처리할 때에 최고의 재판관이신 하나님에게 근무 보고를 하려는 듯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참조, 17:19, 대하 19:6-7). 교회의 목사들은 말씀을 충실히 전하며, 구원의 교리를 불순하게 하지 않고(참조, 고후 2:17) 순수하고 순결하게 하나님의 백성에게 전달해야 한다. 교훈으로 가르칠 뿐 아니라, 실생활의 모범으로 가르치라. 간단히 말하면, 그들은 맡은 양들에 대해서 선한 목자로서의 권위를 행사하라(참조, 딤전 3, 딤후 2, 4, 1:6이하, 벧전 5). 신자들은 그들을 하나님의 사자와 사도로서 그것들을 영접하며, 최고의 선생이 허락하신 영예를 그들에게 돌리며, 생활에 필요한 것을 제공해야 한다(참조, 10:10이하, 10:15, 15:15이하, 고전 9, 6:6, 살전 5:12, 딤전 5:17-18). 부모들은 하나님이 맡기신 자녀들을 양육하며 다스리며 가르치며, 학대로 노엽게 하거나 부모를 배반하게 만들지 말고(6:4, 3:21), 부모답게 인자하고 친절하게 자녀를 사랑하고 포옹하여야 한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할 의무가 있다. 청년들은 노인들을 공경하라. 노인이 공경을 받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기 때문이다. 노인은 부족한 청년들을 자기들의 우수한 지혜와 경험으로 지도하며, 그들을 가혹하게 책망할 것이 아니라, 온화하고 인자한 태도로 엄격한 언사를 완화해야 한다. 종들은 열심으로 부지런히 주인에게 복종하되, 보이려는 것이 아니라 충심으로 해서 하나님을 섬기듯 하라. 또 주인들은 종들에 대해서 까다롭고 고집을 피워, 공연히 엄격하거나 학대해서는 안 된다. 도리어 그들을 형제로 인정하며, 자기도 주님 앞에서 그들과 같은 종임을 인정해서, 서로 사랑하며 인자하게 대우해야 한다(참조, 6:5-9, 3:22-25, 2:9-10, 벧전 2:18-20, 4:1, 1:16).

 

이와 같이 각각 자기가 처한 지위와 처지에서 이웃에게 무슨 빚을 졌는가를 생각하며, 또 진 것은 갚아야 한다. 더구나 우리는 항상 입법자이신 하나님을 생각해서, 이 원칙은 우리의 손뿐만 아니라 마음을 위해서도 제정하셨으며, 그 의도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행복과 이익을 보호하며 증진하도록 노력하라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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