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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1년 5월 7일, 아돌프 하르낙(Carl Gustav Adolf von Harnack, 1851–1930)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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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7일 “아돌프 하르낙, 기독종교와 헬라 문화의 혼합”

오늘은 아돌프 하르낙(Carl Gustav Adolf von Harnack, 1851–1930)이 태어난 날입니다. 1851년 5월 7일, 하르낙은 당시 러시아의 영토였던 도르파트(Dorpat)에서 출생했습니다. 라이프치히(Leipzig)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하르낙은 유명한 교리사가(敎理史家)였습니다. 그는 기적에 대해 비판했고, 부활과 동정녀 탄생을 거부했으며, 고대종교회의의 권위를 부인했습니다. 하르낙의 이러한 정통교리에 대한 부정적 태도는 베를린 대학 교수 임용에 장애가 되기도 했습니다. 교회와 교수진과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그의 공로를 인정하였고, 황제 빌헬름 2세는 1914년에 하르낙에게 공(公: von)의 작위를 수여하기도 하였습니다.

하르낙의 교회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교훈에 대한 자신의 개념 위에 기초되었다. 19세기에 있어서 역사 비평의 방법론들이 예수의 인격에 적용되었다. 일련의 학자들이 「역사적 예수」(Jesus of history)를 재구성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지만, 대체로는 예수 자신에 관해서가 아닌 인간의 형제애와 하나님의 부격(父格)에 관한, 단순한 자유주의적 메시지를 전파한 비이기적인 모습을 지닌 인물로 종결지었으며, 예수에 관한 기사들이 과학적이고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그들이 좋아하지 않는 복음 기사들의 특징(초자연적 기사들)들을 찾아내어 여과시키고 있었다. 한 로마 가톨릭 비평가는 하르낙에 관해 평하기를 “가톨릭의 암흑의 19세기 동안에 하르낙이 연구하여 규명한 그리스도는 깊은 우물 밑바닥에 투영된 자유주의적 프로테스탄트의 한 국면의 반영일 뿐이다”라고 하였다.[Tony Lane, Christian Thought, 김응국 역, 『복음주의 입장에서 본 기독교 사상사』 (서울: 나침반, 1987), 386.]

당시 교부들에 관한 최고 전문가였던 하르낙은 복음이 그리스 철학으로 인해 오염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개혁교회의 복음의 우선성 주장, 로마가톨릭의 피라미드식 관료적 계급 구조, 동방정교회의 의식주의를 모두 비판한 하르낙의 가르침은 교회로부터의 해방으로 이어졌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자 하르낙이 말한 것처럼, 예수님의 복음과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다른 것일까요? 예수님의 가르침만이 기독교의 본질이고 사도들의 복음은 교리라는 그의 구분은 잘못된 것입니다. 교리와 신앙고백의 출처는 성경이며, 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 위에 서 있음을 기억합시다.

그(하르낙)의 『교리사』는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그것은 단지 교리사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풍부하게 하고 많은 새로운 관점들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논제 방식과 결별하고, 교리의 기원과 발전을 유전적으로 추적하고, 특정한 교리들을 기독교의 전체적 조망의 부분들로 이해하여, 기독교가 등장하고 확대 전파된 문화적 환경 전체와 연관하여 기독교를 검토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큰 장점들은 교리에 대한 편파적이고 그릇된 정의에 의해 그늘에 가리고 말았다. 하르낙에 의하면, 교리란 “그 착상(着床)과 발전에 있어서 복음의 토양에서 비롯된 헬라 정신의 작품으로 결국 기독종교와 헬라 문화의 혼합이었다.” 교리에 관한 이러한 견해는 틀린 것이다. 왜냐하면 기독교회는 그 시작부터 기독종교와 헬라 철학의 혼합을 아주 심각하게 경계했고, 나중에 오리게네스의 이런 혼합을 단호히 비난했기 때문이다.[Herman Bavinck, Gereformeerde Dogmatiek, 박태현 역, 『개혁교의학 1』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1),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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