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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새번역] The Book of J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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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의 핵심적인 내용은 고난이다. 모든 사람이 고난의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은 오히려 보편적인 호소력을 가진다. 

역사적 배경

저작연대 및 저작권의 문제

이 책 자체는 저자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러나 학자들간의 지배적인 견해는 욥기가 오랜 과정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주장에는 원래의 부분이 어느 부분이며, 언제 어느 부분이 첨가되었는지 등에 대해서 거의 의견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보수진영에서는 하나의 통일된 저작으로 보려는 움직임을 계속해 왔다. 대체로 매우 이른 시기를 선호하지만, 일부는 솔로몬시대나 8세기 경으로 간주하는 경우들도 있다.

시대배경

시대를 추측할 수 있는 몇 가지 단서들이 있다. 우선 플롯은 항상 족장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욥은 한 대가족의 우두머리로서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내산 율법 수여 이후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 다른 중요한 사항은 욥이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스땅은 이스라엘 영토 내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음이 거의 분명하다. 구속사의 점진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욥은 언약 공동체가 하나의 특정 가족으로 좁혀지는 아브라함 언약 이전에 살았던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그럴 듯하다. 물론 위의 사항들이 저작 연대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배경일 뿐이다. 진화론적인 주장을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이 책에 나오는 발달된 천사론 및 사탄에 대한 상세한 개념은 이스라엘 역사의 후대에 파생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문학적인 분석

구조

간단하게 개괄할 수 있다.
욥 1-2장 산문체의 프롤로그
욥 3-31장 욥과 세 친구의 대화
욥 32-37장 엘리후의 독백
욥 38-42:6 야훼의 말씀하심
욥 42:7-17 산문체의 프롤로그

구조의 분석

욥기는 샌드위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운문체의 외곽틀을 가지고 대화가 그 중심에 선다. 어떤 학자들은 이런 구분을 가지고 욥기서를 조각내려고 하지만, 아무런 증거도 댈 수 없는 상황이다. 세 친구와의 긴 대화는 세 주기의 대화로 구성된다. 이 대화들이 가진 가시적인 성격은 이것들이 욥과 그의 세 친구 사이에 있었던 대화를 그대로 필사해서 대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대화들은 고도의 문학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세 친구의 주장들은 인과응보 신학에 헌신된 옛 지혜를 대표한다. 욥과 세 친구와의 논쟁의 핵심에는 누가 지혜로우냐 하는 질문이 놓여있다. 누가 욥의 고난에 대한 바른 시각을 갖고 있는가? 물론 세친구들이 자신들의 지혜에 대해서 옳다하고 다른 사람을 비웃고 있지만, 욥은 정직하게 모든 지혜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고백한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시는 장면이 욥기는 절정에 이른다. 하나님의 임하심은 심판을 위해서 임하심과 같은 형태이다. 욥은 자기의 고난의 이유를 두고 하나님과 쟁론하기를 바랬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욥이 질문하고 있던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답을 주지 않으신다. 오히려 하나님의 완전하신 지혜와 그가 창조하신 자연 질서에 대한 완전한 지배를 증명해주며, 욥의 무지를 이에 대비시키고 있다. 이 질문들 뒤에 함축된 의미는 도덕적인 질서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고, 욥도 친구들도 모르고 있다. 하나님은 참된 지혜자이시다.

욥기의 마지막 장면은 욥이 하나님과 화해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회복하는 이야기로 끝난다. 욥이 비록 참을성 없이 하나님을 찾았지만, 욥은 하나님을 욕하거나 비난하지 않았으며, 친구들의 논리에 굴복하지도 않았다. 결정적으로 하나님과 대면했을 때 그는 즉각적인 회개와 순종을 한다.

문학적인 배경

욥기는 지혜문헌인데, 지혜 문학은 국제적인 성격을 띤다. 또한 고난의 문제는 단지 성경 안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모든 종교에 있어서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로서 고대 사회에서는 아주 일반적인 주제였다. 이 때문에 욥기와 고대 근동의 문헌들과의 관련성을 찾으려는 시도들이 많이 있었는데, 소위 바벨로니아의 욥기와 바벨로니아 신정론을 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기는 다른 모든 것과 구별되는 독특성을 가지고 있다. 엔더슨은 이에 대해서 "욥기는 인간의 비참이라는 주제를 집요하게 다루는 일관성에 있어서, 이 문제의 다양한 측면들을 검토하고 다루는 폭에 있어서, 대담한 도덕적 유일신 신앙의 강도와 투명성에 있어서 각 견해의 대표자들의 성격 묘사에 있어서, 그 시적인 서정성의 수준에 있어서 그 극적인 효과에 있어서 그리고 인간의 실존이라는 불가해한 난제를 직면하는 지적인 능력에 있어서 다른 모든 비슷한 문헌들을 훨씬 뛰어 넘는다. 이런 모든 점에 있어서 욥기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장르

내용적인 측면에서 보면 신정론적인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나은 명칭은 "지혜 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핵심적인 주제는 참 지혜의 근원이 누구인가?라는 것이다. 

욥기를 단순한 허구로 보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욥기가 역사적 사건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요소들이 많다. 욥기의 첫 번째 절은 삿17장이나 사무엘상1장과 비슷한데,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는 양식이다. 둘째, 욥이란 인물은 욥기 이외의 본문들에서 세 번이나 언급되는데, 그 중 두 번은 구약의 다른 역사적인 인물인 노아와 다니엘과 함게 언급되어 있다.

물론 욥기는 역사기록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의 다른 요소들을 볼 때 역사적인 정확성이 크게 우선순위를 갖고 있지는 않다. 욥기는 단순한 역사 기록이 아니라, 이 이야기를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성이 있는 지혜 문학인 것이다.

신학적인 메시지

하나님의 지혜

누가 지혜로운가? 욥기는 하나님 만이 지혜의 근원이시며, 그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시는 식으로 지혜를 펼치신다. 거기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회개와 복종일 따름이다. 욥이 세 친구에게 자신을 변호한 것이 얼마나 옳은가에 상관없이 자신이 하나님에 대해서 인내심이 없었다는 점을 진심으로 회개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이 책의 원래 의도에 대한 바른 해석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이것이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정경적인 태도와 더 잘 일치한다는 것은 확실한 일이다.

인간의 고난

하나님께서는 보다 중요한 고난의 문제에 대해서 대답하심으로서, 왜 내가 고통을 당하는가? 라는 욥의 질문에 간접적인 대답을 하신다. 모든 인생이 고난의 문제를 떠날 수 없으며, 또한 모든 고난이 단순한 인과 응보의 논리로 해결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9장에서 태어나면서부터 소경된자에 대해 말씀하실 때 역시 인과응보의 신학을 거부하셨다.

신약으로의 접근

욥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고난받는 무고한 자가 자신의 지혜와 권능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을 꾸짖으신다. 신약에 와서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대처에 대해서 확고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으로 무고하게 고난을 받으신 분이시며, 유일하게 죄가 전혀 없으신 분이시다. 하나님 자신이 악의 쓸모 없는 결과들을 껴안으시고 받아들이셨다는 점은 욥 및 욥과 같은 모든 인간들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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