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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Desert)” [2017년 6월 10일 주일 설교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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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요한계시록 12:1)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때 유념해야 할 원리가 있습니다. 계시록에 등장하는 난해한 내용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본문에 대한 해석의 차이 때문에 교회가 갈라서기도 했다는 것은 슬픈 사실입니다. 이러한 난해본문은 우리를 겸손케 하며,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합니다. 오직 주님만이 이 말씀의 주인이시요, 진정한 해석자이십니다. 참으로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계시록의 첫 장과 마지막 장에서 이 예언의 말씀을 대하는 자들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려주셨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요한계시록 1:3)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22:7)

주님은 얼마나 자상하신지요! 주께서는 이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 말씀을 듣고 읽으며 실천하는 사람이 복되다고 하셨습니다. 무지함과 오류에 빠지기 쉬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요한계시록의 몇몇 상징들과 사건들이 해석하기 어렵다 해도, 이 책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의 빛 아래서 명백히 드러난 것을 지켜 행하고자 애쓰는 자들을 주님은 귀히 보십니다.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요한계시록 12:5)

본문에 나오는 “여자”는 궁극적으로 “교회”를 의미합니다. 여자가 낳은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교회인 이스라엘 가운데서 나셨고, 구속의 사역을 성취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주님은 시편 2편에 나온 왕처럼 철 막대기로 모든 나라와 우주를 다스리시는 분, 즉 강력한 주권자이십니다. 그런데 승천하신 예수님의 재림을 대망하는 교회는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땅으로 쫓겨난 사탄과 그의 졸개들이 여인, 즉 예수님의 신부된 교회를 괴롭히기 때문입니다.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요한계시록 12:13)

그러나 괜찮습니다.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여인의 피신장소는 광야, 즉 사막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녀는 보호와 양육을 받았습니다. 3년 6개월간 가뭄이 지속되는 동안 광야에서 물과 떡을 공급받은 엘리야처럼 말이지요. 이것이 교회의 영광입니다. 교회의 힘은 머릿수와 재정규모에 있지 않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알고, 의지하는 만큼 강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온 우주의 주인이십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얼마나 그분께 피하는가? 교회는 주님을 철저히 의지하고 있는가?” 40년간의 광야 생활 속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의 옷과 신발은 낡거나 해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더운 낮에는 시원한 구름기둥으로, 춥고 무서운 밤에는 따뜻한 불기둥으로 함께 해 주셨습니다. 그 사막 한가운데서, 주님은 만나를 내리시어 먹이셨고, 반석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하셨습니다. 친구여, 이것이 교회의 자랑입니다. 우리의 자랑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광야 속에 있는 것 때문에 한숨짓지 마십시오. 한숨은 회개할 때 짓는 것으로 족합니다. 고독한 사막 속에서 참 신앙이 자라납니다. 교회는 이미 이겼고, 또 이길 것입니다. 광야 가운데 함께 하시는 주님을 만나십시오. 지금 예수님께 팔을 뻗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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