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 2장 “물고기 뱃속에서도 기도할 수 있다면”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요나 2:1)
요나가 바다에 던져졌습니다. 그러자 바다의 뛰노는 것이 곧 그쳤습니다. 요나는 익사(溺死)할 것이 분명합니다. 바다 풀이 머리를 감싸는 깊은 곳까지 가라앉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그를 죽이시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교훈을 주사 그를 교정(敎正)하길 원하셨습니다. 요나와 같이 우리들도 얼마든지 풍랑을 만나고 바다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됩니다. “주께서 내게 무엇을 가르치고자 하시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 제가 무엇을 돌이키길 원하십니까?”라고 물어야 합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늦은 회개와 기도에도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요나 1:17)
요나서 1장의 마지막 절은 2장의 첫 절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장과 절의 구분은 영감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참으로 오묘합니다. 요나의 뒤를 밟으시고 그를 추적하시는 하나님께서는 풍랑을 일으키시고 그가 바다에 던져지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십니다. 신자의 삶에 우연이란 없습니다. 요나를 고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게 적극적입니다. 큰 물고기의 뱃속에 갇힌 요나. 그곳에서 요나는 자기의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니느웨로 가라는 말씀을 들을 때 요나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풍랑을 두려워하여 저마다 자기 신에게 기도하고 있지만 요나만큼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분명히 듣고, 폭풍을 똑똑히 보고 있지만 절대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캄캄하고 냄새나는 물고기 뱃속, 칠흑 같은 어둠과 익숙지 않은 소리에 둘러싸인 요나는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찾습니다. 회개하고 서원합니다.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면 물고기 뱃속도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까맣게 잊혀졌다면 모든 것이 완벽한 파라다이스라도 지옥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풍랑 이는 바다 위에 있습니까? 기도할 때인 줄 알고 엎드립시다. 물결이 넘실댄다 하여도 천국의 단맛을 보게 될 것입니다. 물속에 빠져 죽을 때만 기다리고 있습니까? 주의 이름을 외쳐 부릅시다.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살려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물고기 뱃속과 같은 어둠 속에 있습니까? 거기에서 내 하나님을 찾읍시다. 밝은 빛을 비추어주시는 성령님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엎드리지 않는 내게 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 앞에 죄를 쌓았습니다. 하지만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를 징계하시되 사랑으로 다루십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고 니느웨로 갈 것입니다. 고통은 기도의 기회입니다.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외침입니다. 물고기 뱃속에서도 기도할 수 있다면 소망은 남아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요나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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