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는 왕이 있기 전에 에돔 땅을 다스리던 왕들은 이러하니라 브올의 아들 벨라가 에돔의 왕이 되었으니 그 도성의 이름은 딘하바며” (창세기 36:31-32)
본문은 창세기 25장과 비슷한 구조를 보입니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 이스마엘의 족보가 나오는 것처럼, 본문 역시 이삭의 죽음 후에 에서의 족보가 등장합니다. 야곱 이야기, 특히 요셉에 관한 일들이 나오기 전, 에서의 후손들의 부요함과 창대함은 무엇을 뜻할까요? 장자권을 소홀히 여겼던 에서일지라도, 하나님은 은혜로우셔서, 그와 그의 자손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에서의 후손들은 나라를 이루고 왕을 세웠습니다. 야곱의 후손들보다 훨씬 빠르게 말입니다. 우리는 세속적 위대함이 영적 위대함보다 더 빠르게 성장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적인 복은 믿음과 인내를 요구합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이 잘 나가는 동안 신실하게 기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주님의 복은 연단과 시련을 통해 주어집니다. 이어지는 요셉 이야기는 그 명백한 예증입니다.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창세기 37:2-5)
야곱은 아직 충분히 거룩한 삶을 살고 있지 아니합니다. 그는 자기 부모처럼 편애합니다. 자신이 사랑했던 라헬이 낳은 아들 요셉에게 치우친 사랑을 보입니다. 형들은 질투합니다. 요셉은 형들의 잘못을 고자질합니다. 요셉은 자기가 꾼 두 개의 꿈 이야기를 하며 더욱 형들을 자극합니다. 결국 요셉은 형들에 의해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고 맙니다.
“그의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버지의 양 떼를 칠 때에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창세기 37:12-13)
뒤죽박죽, 엉망진창인 사건들 속에서도 우리는 희망을 봅니다. 요셉 이야기를 통해 우리 주 예수님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목자였습니다. 예수님도 양의 문이 되시는 목자이십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예수님 역시 성부의 사랑받는 독생자이셨습니다. 하늘에서 들려온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이 이를 증명합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미움을 받은 것처럼, 예수님도 자기 백성에게 미움을 받으셨습니다. 형들이 미워하는 것을 알면서도 요셉은 아버지의 말씀을 받들어 먼 길을 떠납니다. 예수님도 사람들이 영접하지 않고 죽일 것을 아시면서도 성부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세겜 땅은 이전에 형들이 학살을 저지른 곳이어서 언제 보복이 뒤따를지 모르는 위험한 곳입니다. 예수님은 세겜 땅과 같은 위태함 속에 사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찾아 오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요셉과 예수님은 유다라는 사람에 의해 은전에 팔렸습니다. 요셉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을 더욱 밝히 알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