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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1년 8월 17일,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 1761–1834) 출생,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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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7일 “윌리엄 캐리, 주님은 당신의 도움 없이도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이오.”


오늘은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 1761–1834)가 태어난 날입니다. 1761년 8월 17일, 캐리는 영국 노스햄턴의 파울러스퓨리(Paulerspury)에서 출생했습니다. 구두수선공 캐리는 회심 후 몰튼(Moulton)에서 침례교회 목회자가 섬기던 중 해외선교사로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캐리는 1793년에 인도에 도착하여 73세의 나이로 별세하기까지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했습니다.

그는 토마스 스코트(Thomas Scott)와 앤드류 풀러(Andrew Fuller) 같은 사람들에게서 강력한 복음적 영향을 받아 침례교 목사가 되었다. 그는 이방 사역에 선교사 파송을 강력히 주장하여 그의 동료 사역자들을 귀찮게 만들었다. 어느 모임에서 어떤 나이 든 목사가 그에게 엄하게 말했다. “젊은이여, 앉아서 선배 목사의 의견을 존중하시오. 만약 주님께서 이방인을 개심시키기 원하신다면 주님은 당신의 도움 없이도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이오.” 그의 줄기찬 주장으로 1792년 캐터링(Kettering)에서 앤드류 풀러를 서기로 하는 침례교 선교회가 설립되었다. 그날 12명의 가난한 침례교 목사들은 13파운드 2실링 6펜스라고 하는 그들에게는 큰돈을 기부하였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거대한 사역의 시작이었다……벵갈(Bengal)에서 활동하는 윌리엄 캐리의 감동적인 활동 보고서가 모국에 도착하기 시작하자 장로교, 성공회 및 회중교회가 비침례교 선교회를 조직하였고, 1795년에는 그 유명한 런던 선교회가 설립되었다.[A. M. Renwick·A. M. Harman, Story of the Church, 오창윤 역, 『간추린 교회사』 (서울: 생명의말씀사, 1994), 174.]

모든 하나님의 사람이 그렇듯 캐리 역시 완벽한 성도는 아니었습니다. 함께 선교지에 온 자녀가 전염병으로 죽고, 그의 아내는 죽는 날까지 우울증으로 힘겨워 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우리와 같은 복잡다단하고 만만치 않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기대한 캐리의 정신을 우리의 삶 속에서 실천합시다. 캐리는 분명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캐리처럼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걸음이라도 주님을 위해 시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분명한 소명감을 가지고도 두려움 속에 주춤대는 것은 교만의 다른 모습입니다.

세람포에서 캐리는 3개 언어(벵갈어, 산스크리트어, 마라디어)로 성경을 완역하였을 뿐 아니라 다른 언어로 성경이 완역되는 것을 도와주었고 다른 많은 언어와 방언들로 신약성경과 쪽복음을 번역하였다. 아쉬운 것은 양보다 질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었다. 영국에 있는 선교회 본부의 총무인 앤드류 풀러 목사는, 캐리가 인쇄를 위해 영국으로 보낸 성경이 철자와 다른 것들에 문제가 많다며 다음과 같이 나무랐다. “나는 당신처럼 많은 외국어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영어를 그렇게 못 쓰는 사람은 처음 봅니다……당신은 너무 빨리 해치우려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만약 벵갈 번역판도 그렇다면 제대로 성경 구실이나 해낼지 모르겠습니다.” 풀러의 걱정은 쓸데없는 것이 아니었다. 캐리는 크게 낙담했지만, 그의 번역판이 제대로 되어 있지 못한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번역열은 식지 않았다. 그는……다시 번역작업을 하였다.[Ruth A. Tucker, From Jerusalem to Irian Jaya: A Biographical History of Christian Missions, 박해근 역, 『선교사 열전』 (고양: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0), 1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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