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과 흠(stains and blemishes)”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즐기고 노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그들의 속임수로 즐기고 놀며”(베드로후서 2:13)
사도는 교회의 순결을 위협하는 거짓 선생을 경계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들은 거짓 선지자입니다.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입니다. 멸망! 건전한 가르침에 혼탁함을 섞으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교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짓 가르침의 결말은 멸망입니다. 생수(生水)에 들어간 적은 양의 독극물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구원이 병의 치료와 완쾌라면, 멸망은 치료되지 못한 병으로 인한 죽음입니다. 멸망은 아무 저항도 못한 채 야수의 공격에 노출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죄로부터 고침 받고 위험으로부터 건짐 받으며 모든 선하고 아름다운 선물들이 주어지는 것인데, 이것과 정반대의 위치에 있는 것이 바로 “멸망”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병이 계속해서 자기의 길을 달려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위험 속에 빠져 있는 사람을 위험이 계속해서 붙잡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거룩함을 위해서든 참된 행복을 위해서든 모든 선한 것들이 주어지지 않고 거두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의식적(意識的)으로 존재하는 것이 중지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멸망을 당한 자는 자신이 멸망을 당한 것을 압니다. 심지어 그는 멸망의 과정에 있는 동안 그 과정을 압니다. 그러므로 멸망과 관련하여 우리는 의식(意識)으로부터 점차적으로 흐려가는 것, 생명과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은혜로운 많은 것들로부터 죽어가는 것, 그리스도로부터의 거리가 계속해서 멀어져가는 것, 완전한 파멸의 구덩이로 계속해서 가라앉는 것, 자신이 버려졌음을 점점 더 분명하게 의식하는 것 등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버려지면 자신에 대하여도 버려집니다.[Alexander Maclaren, Expositions of Holy Scripture, 정충하 역, 『맥클라렌 강해설교: 고린도전서-에베소서Ⅰ』 (고양: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10), 22-23.]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기 원하십니다. 그러나 거짓 선생과 그들의 가르침은 점과 흠(stains and blemishes)입니다. 이들을 용납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아닙니다. 바른 교리를 수호하는 것은 영광스러운 교회로의 첩경(捷徑)입니다.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에베소서 5:27)
거짓선생은 세상, 곧 큰 성 바벨론으로부터 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순결한 성도의 탈을 썼습니다. 그러니 깨어 기도합시다. 입술의 고백이 삶으로 이어지는지 지켜봅시다. 분별력을 키우기 위해 이성을 사용하여 성경을 공부하고, 기도하는 것은 목회자만의 일이 아닌 모든 교회회원의 의무이자 특권입니다. 주여, 순결하고 거룩한 교회를 지키는 일을 중히 여기게 하소서.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요한일서 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