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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백스터(Richard Baxter

1691년 12월 8일, 리처드 백스터(Richard Baxter, 1615–1691) 별세, "요리문답 교육과 권징의 회복, 그리고 목회자들의 연합" 12월 8일 “리처드 백스터, 한 영혼은 너무나 귀하기에, 노력도 안하고 포기할 수 없습니다.” 오늘은 리처드 백스터(Richard Baxter, 1615–1691)가 별세한 날입니다. 1691년 12월 8일, 백스터는 런던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임박한 죽음 앞에서,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손에 들린 펜이었을 뿐이라고 고백하며, 친구들의 칭송을 거부했습니다. 회심을 강조했던 목사 백스터는 교회개혁을 위해 3가지를 강조했습니다. 그것은 요리문답 교육과 권징의 회복, 그리고 목회자들의 연합이었습니다. 이는 그가 대륙의 개혁자 - 잔키, 칼빈, 무엇보다 부처 - 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백스터는 성도들을 가족별로 만나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부자든 가난하든 교구 내에 있는 각 가정에.. 더보기
1615년 11월 12일, 리처드 백스터(Richard Baxter, 1615–1691) 출생, "더 이상 두 견해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마십시오. 주님이 하나님이시라면 그를 따르십시오." 11월 12일 “리처드 백스터, 나는 다시는 설교하지 못할 것처럼 설교했습니다.” 오늘은 리처드 백스터(Richard Baxter, 1615–1691)가 태어난 날입니다. 1615년 11월 12일, 백스터는 잉글랜드 슈롭셔(Shropshire)의 로우턴(Rowton)에서 출생했습니다. 대학에서 교육받지 못했던 그는 청교도들의 작품을 읽으며 독학했습니다. 특히 리처드 십스(Richard Sibbes)의 『꺼져 가는 심지와 상한 갈대의 회복』을 읽고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백스터는 23세에 안수를 받고 사역을 시작했는데, 특히 17년간 키더민스터(Kidderminster)에서 목회하면서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병약한 중에도 그는 말씀사역에 힘썼습니다. “나는 다시는 설교하지 못할 것처럼 설교했습니다. 그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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