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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5월 18일,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 1873-1957)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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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 “루이스 벌코프, 조직신학”

오늘은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 1873-1957)가 별세한 날입니다. 1957년 5월 18일, 개혁신학자 벌코프는 83세의 삶을 마쳤습니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10세가 되기 전에 미국으로 이민하여 미시간 주의 그랜드 래피즈에 정착한 벌코프는 칼빈대학, 칼빈신학교 그리고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수학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 카이퍼와 헤르만 바빙크, 게할더스 보스와 벤자민 워필드의 영향 아래에서 공부한 후 기독교 개혁교회의 목사로 안수 받았습니다. 벌코프는 22권 가량의 책을 저술했는데, 그의 책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은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목회사역으로 좋은 평판을 얻은 그는 1906년에 컴멀스 가의 기독교 개혁교회에서 칼빈 신학교의 해석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1914년부터는 신약학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그 후 그는 1920년부터 1921년까지 프린스톤 신학교의 “스톤 강좌”(Stone Lectures)에 초청되어 “현대 사상과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 in Modern Life and Thought)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기도 하였다. 신약학을 강의하던 벌코프는 1926년부터 조직신학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는데, 은퇴하던 1944년까지 강의하였다. 1931년에는 칼빈 신학교의 학장에 임명되어 13년간 봉직하였다. 또한 그는 1921년부터 1926년까지 “증인” 지의 책임편집자로, 그리고 1925년부터 1926년까지는 “개혁주의 신문”의 책임 편집자로 일하는 등 왕성한 활동력을 과시하였다.[정성구, 『개혁주의 인명사전』 (서울: 총신대학교출판사, 2001), 295.]

벌코프는 성경의 무오성과 권위, 축자영감설을 강조하며 은혜의 교리를 수호했습니다. 그는 독특한 사상을 주장한 학자는 아니었으나 성경에 충실하여 정통교리를 잘 요약하고 정리한 교회의 교사였습니다. 조직신학자로 알려진 벌코프가 해석학과 신약학을 먼저 가르쳤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닙니다. 그 시대의 신학교수들은 임명된 과목에 순응하여 가르치곤 했습니다. 벌코프의 가르침은 성경 이해에 큰 도움을 줍니다. 그의 책으로 교리를 공부해보실 것을 권합니다.

현시대는 무교의적(undogmatic age)인 시대이다. 교의뿐만 아니라 교리와 교리적인 진리의 조직적인 진술에 대해 여러 가지 반대가 있다. 약 반세기 동안 교의학 저서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지만 종교역사, 종교철학, 종교심리학에 대한 저서는 홍수를 이루었다. 기독교는 교리가 아니라 생명이며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기만 한다면 우리가 믿는 것은 거의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주장을 종종 듣게 된다. 특히 미국에서는 교의 없는 기독교에 대해 끊임없이 주장되고 있다. 교의적인 설교는 호감을 얻지 못하며 따라서 많은 단체에서 기피되고 있다. 많은 보수적인 기독자들은 순전히 경험적인 설교를 극성스럽게 요구하는 반면에, 보다 자유주의적인 기독자들은 대부분 윤리적 혹은 사회적인 설교를 더 원한다……성경은 분명히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된 대로의 진리를 무시할 수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사도들은 진리에 관하여 매우 열심이었다. 진리의 중요성을 최소로 만들고 따라서 그것을 무시하는 자들은 결국에 그들이 거의 기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Louis Berkhof, Systematic Theology, 고영민 역, 『벌콥 조직신학 (상)』 (서울: 기독교문사, 2007), 28-29, 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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