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개론) 1. 사사기라는 명칭 사사기는 여호수아의 죽음과 왕정이 시작되는 시기 사이에 이방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한 '지도자들(쇼페팀)'이라는 낱말에서 그 명칭이 유래된다. '쇼페트'라는 낱말은, 영어의 'iudge'(판관)가 나타낼 수 있는 뜻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고대의 카르타고와 우가릿에서 이 말은 문관(文官)혹은 국가의 수뇌를 묘사할 때 사용되었다. 고대 우가릿에서 출토된 가나안 문헌에서는 '우리의 사사(sh-ptn)'라는 표현이 '우리의 왕(mlkn)'에 관하여 그것과 병행해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의 사사시대는 왕정시대와는 구별되어야한다. 비록 침략자들의 외부적 압력을 예상하여 결국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게 되긴 하였으나(삼상8장), 사사시대 동안에는 왕정에 대한 반감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사사기 9:8-15를 참조하라). 하나님 자신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간주되었지만(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사무엘상 8:7) 백성들의 죄가 이러한 이상적인 통치를 무정부 상태로 몰고 갔다(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 21:25). 사사들은 문무(文武) 양면에 걸쳐 하나님 아래서 권능을 행하였다. 사사기 11장27절 (내가 네게 죄를 짓지 아니하였거늘 네가 나를 쳐서 내게 악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원컨대 심판하시는 여호와는 오늘날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의 사이에 판결하시옵소서 하나)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하쉬쇼페트, 즉. '심판하시는 여호와'라고 불리우는데 하나님의 '심판들(미쉬파팀)'은 여호와의 율법 즉 토라로 알려진 교훈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다음을 참조하라. 1)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시편 19:9, 2)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는 정직한 마음으로 주께 감사하리이다, 시편 119:7). 2. 저작 시기 및 저자 구약의 다른 역사서들과 마찬가지로 사사기도 익명으로 기록되었다. 본문의 내용을 토대로 우리는 사사기의 저작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그것은 실로의 멸망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의 지은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 사사기 18:31)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사사기 17:6)'라는 귀절은 그 시기가 왕정 기간 중이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여부스족이 이 때까지도 예루살렘에 거한 것으로 언급되는데(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한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사람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날까지 예루살렘에 거하더라, 사사기 1:21) 이것은 그 시기가 다윗 통치 기간 중에 있었던 여부스 정복 이전이었음을 시사해 준다. 또한 게셀에 대한 언급(에브라임이 게셀에 거한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사람이 게셀에서 그들 중에 거하였더라, 사사기 1:29)은 바로가 그 성읍을 솔로몬에게 결혼 선물로 주기 이전이었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전에 애굽 왕 바로가 올라와서 게셀을 탈취하여 불사르고 그 성에 사는가나안 사람을 죽이고 그 성읍을 자기 딸 솔로몬의 아내에게 예물로 주었더니, 열왕기상 9:16). 따라서 이러한 본문의 증거자료는 사사기의 저작 시기를 사울의 통치 기간 중 또는 다윗 시대 초기로 제시해 주는데, 그렇다면 그 시기는 대략 주전 1050년에서 1000년 사이가 될 것이다. 탈무드와 초대 기독교 전승은 사사기의 저자가 사무엘이라고 하는데, 증거는 이를 지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사사기가 사무엘과 동시대인에 의해 쓰여 졌다는 것을 암시한다. 우리가 현재 지니고 있는 형태대로의 사사기는 그것이 복잡한 구조의 편집물이 아님을 입증하는 통일성을 보여 준다. 3. 역사적 배경 여호수아의 인도하에 가나안으로 들어간 세대는 전략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각 지파가 할당된 지역에 정착케함으로써 많은 것을 이루었다. 그러나 가나안의 중요한 요새들을 여호수아는 우회하여 지나갔고, 따라서 각 지파들은 그들의 영토를 점령하기 위해 싸워야 하였다 (여호수아 13:1-7). 사사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입성 후 약200년에 걸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때는 철의 사용이 일반화되었는데 이 강력한 금속은 농업과 전쟁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소아시아의 헷족속은 최초로 주전 1400년경 철제 무기를 사용하였다. 그들은 주전 13세기경 여호수아가 광야에서 가나안으로 밀고 들어갈 때까지 애굽에 대하여 여러가지로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각 지파들은 그들이 기업으로 받은 땅을 확고히 하려 하였다. 팔레스틴 일대에는 많은 혼란이 일어났다. 블레셋이 지중해 연안으로부터 밀고 들어와 억압하였으나 주전 1000년 직후 다윗의 시대까지 물리치지 못하였다. 미디안 족과 같이 광야에서 온 다른 족속들은 이스라엘의 동족 측면을 공격하였다. 흩어져 있던 지파들은 분열되어 약화되었다. 때때로 형제 지파들에게 비극이 닥쳤을 때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은 무관심한 것 같았다. 이스라엘백성들에게는 그들을 뭉치게 해 줄 지도자가 없었다. 그들은 연속적으로 적의 손아귀에서 고통을 당하였다. 이러한 혼란기가 주전 14세기에 있었던 여호수아 인도하의 가나안 정복과 주전 11세기에 사울 왕에게 기름 부은 위대한 선지자요 사사인 사무엘의 등장 사이를 잇는 교각이었다. 4. 메시지 사사기의 중심 메시지는 각 페이지에 담긴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설명에서 발견된다. 저자는 이스라엘의 모든 사건들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본다. 이스라엘이 그들의 땅을 지키지 못하고 그들의 종교 및 문화생활을 강력히 고수하지 못한 것이 계속되는 비극의 원인이었다. 우상숭배가 시작되었고 사악한 압제자들이 등장하여 그들을 못샅게 굴었으며 굶주림과 기근이 그들 곁을 떠날줄 몰랐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항상 '시대가 요구하는 인물'을 세워주셨다. 바로 이것이 이 책의 주제이다. 고통이 극에 달하여 백성들이 절망적으로 울부짖을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압제자의 멍에를 뿌리치고 벗어나게 하기 위하여 사사 즉 구원자를 불러 세우셨다. 이들 중에는 기드온이나 사무엘과 같이 선하고 고귀한 사람들이 있는 반면 삼손과 같이 변덕스럽고 불안정한 사람들도 있었다. 사사기가 전해주는 메시지는 또한 하나님께서 강자를 엎으시려고 약자를 세우신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기드온은 그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였으며, 그 아비 집은 므낫세 중에 가장 약하였다(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사사기 6:15). 백성들은 기드온의 병사들처럼 약하였고 무장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흙으로 만든 항아리와 횃불 및 소름끼치게 하는 나팔 소리, 그리고는 하나님에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들로 그들은 적군을 쫓았고, 적의 무기를 노획하여 미디안족속을 광야로 되몰아냈다. 중요한 또 하나의 교훈은 어떠한 무기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지닌 백성을 멸할 수 없으며 전쟁에서의 모든 무기는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시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수천의 군대보다도 훨씬 강하다. 마지막 교훈은 인간이 자신의 소견에 비추어 옳은 것을 마음대로 행할 때마다 무질서가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행할 때에 문명 생활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모든 면에 있어 에덴 동산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원죄의 한 모습인 것이다. 인간은 오로지 하나님의 율법과 사랑에 순종함으로써만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하여금 누리게 하는 행복을 발견할 수있다. 주제 이 책은 여호수아의 사후에 군주 시대가 시작된 때의 사무엘 시대까지 히브리 백성의 갖가지 흥망성쇠를 열거한다. 여호수아는 특별한 의미에 있어서 모세가 시작한 계획을 수행하고 완성하도록 택함을 받았다. 여호수아가 죽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모세의 권위있는 지도나 여호수아의 행정적 경험을 다 버리고그들이 새로 얻은 땅에 대하여 독립적 관리로 강화해 가는 기간에 들어섰다. 이전까지 히브리인들은 노예로 있다가 광야의 유랑 생활을 하고 마침내 진영과 정복의 곤욕을 치루는 등 갖가지 불안하고 유동적인 상태에 살아왔었다. 주로 위대한 지도자의 자서전으로 꾸며진 여호수아서는 이 정복의 마지막 단계를 열거한다. 사사기는 다음 단계의 이스라엘 역사를 다루며 그들이 방랑적인 유목민으로부터 정착적인 농민으로 전환하는 도전을 맞는 것을 보여 준다. 이 책을 펴노라면 우리는 전쟁의 열기 속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우리는 즉시 여호수아의 지도를 받아 연합된 진군을 한 후에 지파들이 흩어져 전쟁 준비를 서두르는 모습에 뛰어든다. 전쟁 회의가 열리고 지파들이 요단 골짜기에서 그들에게 정복하도록 분배된 지역을 소유하기 위하여 올라갈 때 휘두르는 무기 소리가 들리게 된다. 전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철병거들이 골짜기를 요란스럽게 지나가며 산허리는 무장한 군인으로 가득하다. 노래는 싸움과 전쟁에 속한 것들이며, 이스라엘의 대적을 분쇄한 자들은 영웅이 된다. 히브리인들이 산지대에서 승리하였지만 평야지대에서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낼 수 없었다. 전쟁 소리가 사라져갈 때 가나안 족들은 여전히 헤레스 산에서부터 아얄론, 샤알빔, 기브온, 비에롯, 기럇여아림, 그리고 예루살렘을 통하여 동서로 이어진 강력한 요새화된 일련의 성읍들을 소유하였다. 멀리 북쪽으로는 잇사갈, 스불론, 아셀, 그리고 납달리가 또 다른 장벽인 돌, 하롯셋, 므깃도, 타아낙 그리고 이블림에 이어지는 바다에서 요단강에 이르는 요새들에 의하여 중앙 가나안에 있는 지파들로부터 분리되었다. 벳산의 요새까지 요단으로 내려 뻗친 풍요한 이스르엘 계곡은 아직도 가나안 족들에게 속해 있었다. 그 땅을 가로지른 이 두 일련의 요새들은 지파들 간의 교통과 연합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같이 아직 정복되지 않은 성읍들에 의하여 상호간 두절된 상태에서 히브리 지파들은 공격에 노출되었으며, 그들이 적의에 찬 주민들 중에서 취한 중심지들을 수호하기 위하여 아주 어렵게 부분적인 연합을 이루어 그들의 대적을 대항할 수 있었다
기본카테고리
사사기 1-21장 [쉬운성경] Book of Judges [이 당시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마다 자기 생각의 좋을 대로 하였다] No king in Isr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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