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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9일 누가복음 5장 “위대한 헌신을 보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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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9일 누가복음 5장 “위대한 헌신을 보고 싶다면”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누가복음 5:8)

밤이 새도록 수고했지만 아무 것도 잡은 것이 없는 어부 베드로. 그가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두 배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물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이적을 경험한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선 이사야 선지자처럼 두려워 떨고 있는 베드로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베드로는 그 시로부터 배와 그물을 비롯한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전적으로 따르기 시작합니다. 종종 교역자와 교회가 조급하게 일을 처리할 때가 있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을 무리하게 일꾼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베드로와 같은 헌신을 빨리 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선결되어야 할 과제가 있습니다. 자신의 죄인됨을 느끼고 깨닫는 것입니다. 자신을 ‘벌레 같은 죄인’으로 고백하지 못하는 사람이 교회 안에서 중요한 결정의 자리에 오를 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공부의 필요성을 심각하게 고민해 보지 않은 학생의 열심은 무익합니다. 예수님을 비방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회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방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나의 영적 처지가 세리와 죄인만도 못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직분은 재앙이 되고 맙니다. 예수께서는 건강한 사람이 아닌 병든 사람에게만 의사가 쓸 데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세우기 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죄 용서를 구해본 적이 있습니까? 진실로 하나님을 원합니까?

당신이 죄로 인해 전적으로 파멸하였다면, 구원의 계획에서 목표가 된 사람은 바로 당신이다. 나는 지금, 사랑의 주님은 은혜의 체계를 준비할 때 바로 당신과 같은 사람을 염두에 두셨다는 말을 하고 있다. 지극히 관대한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빚진 모든 사람에게 빚을 탕감해주기로 마음먹는다고 가정하자. 분명히, 이것은 실제로 자기에게 빚진 자들에게만 적용할 수 있다. 천만 원의 빚을 진 사람이 있고, 오백만 원의 빚을 진 사람이 있다. 각자 자기의 빚을 청산하고 채무증서를 돌려받아야 한다. 그러나 제아무리 관대한 사람이라도 전혀 자기에게 빚지지 않은 사람의 빚을 탕감해 줄 수는 없다. 죄가 전혀 없는 경우에는 전능자도 용서해 줄 수 없다. 그러므로 용서는, 죄가 없는 당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용서는 죄가 있는 자들을 위한 것임에 틀림없다. 용서를 필요로 하지 않는 자들, 결코 죄를 범한 적이 없는 자들을 용서해준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Charles, H. Spurgeon, All of Grace, 임원주 역, 『하나님의 구원』 (서울: 예루살렘, 2005), 25.]

본회퍼(Deitrich Bonhoeffer)는 제자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부르실 때, 그는 와서 죽으라고 하신다(When Christ calls a man, he bids him come and die).” 순교자 짐 엘리엇의 부인은 남편의 죽음을 영웅시하는 교회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죄인을 용서하고, 의롭다하시기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서 모든 것이 상대화됩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것은 당연하고, 합당한 반응입니다. 위대한 헌신을 보고 싶다면 십자가와 빈 무덤을 가감 없이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비참함을 직시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주여,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보여도 원리에 충실해야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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