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본카테고리

8월 18일, 콘스탄티누스의 어머니 헬레나(Flavia Iulia Helena Augusta, c.250–c.330)의 축일, "최초의 그리스도 성지 순례자"

반응형

8월 18일 “헬레나, 최초의 고고학자”

오늘은 콘스탄티누스의 어머니 헬레나(Flavia Iulia Helena Augusta, c.250–c.330)가 죽은 것으로 알려지는 날입니다. 로마교에서는 8월 18일을 그녀의 축일로 기념하여 지키고 있습니다. 270년에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Flavius Valerius Constantius)와 결혼하여 콘스탄티누스 1세를 낳은 헬레나는 낮은 신분으로 인해 이혼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아들이 로마의 황제가 되자 다시 받아들여진 헬레나는 325년에 예루살렘으로 떠나 그곳에 세워진 비너스 신전을 허물고, 파묻혀 있던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냈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그녀는 모세가 보았던 불타는 떨기나무, 빌라도가 기록하여 십자가에 붙였던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나무 팻말, 예수께서 못 막히셨던 십자가의 파편 등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헬레나는 ‘최초의 고고학자’로 불리고 있습니다. 헬레나는 자신이 ‘성지’라고 부른 그 장소에 대규모의 교회당들을 건립하였습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는 최초의 그리스도 성지 순례자로 기록된다. 비티니아에서 가난한 여관집 주인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로마 제국의 관료인 콘스탄티우스와 결혼했다. 나중에 남편에게 버림을 받기는 했지만, 아들 콘스탄티누스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여인이 되었다……헬레나는 열성적인 그리스도 교도가 되어 72세의 고령에 성지 순례를 떠나기에 이른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그 여정에서 그녀는 그리스도가 처형당했던 ‘진정한 십자가’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이 십자가가 그녀를 성인 반열에 오르게 했다.[Ellen Anker ed., What Life Was Like Amid Splendor and Intrigue: Byzantine Empire Ad 330-145, 권경희 역, 『음모와 반역의 천년제국』 (서울: 가람기획, 2010), 374.]

헬레나가 그리스도의 역사적 자취를 더듬어 찾아낸 것은 그릇된 일이 아닙니다. 인간은 영혼과 함께 몸을 지니고 있는 존재이기에, 장소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성지(聖地)’로 부르며 신성시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성지 순례는 말은 다른 용어로 대체되어야 합니다. 성물, 성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인트헬레나의 수호성인인 헬레나의 신앙이 건강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장소와 물건에 집착하지 말고, 기록된 말씀을 통해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관집 하녀였다가 황제의 어머니가 된 헬레나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아들은 어머니를 황후(아우구스타)라고 선포했다. 신앙심이 독실했던 헬레나는 죽기 1년 전인 326년에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으로 성지 순례를 떠나 많은 성물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 가운데에는 그녀가 “하늘의 도움으로” 골고다 언덕에서 발견한 십자가와 예수를 십자가에 박은 데 쓰인 못이 있었다. 이후 헬레나는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이 모든 이야기는 다분히 전설적이지만, 헬레나가 성지순례를 떠난 것은 속죄의 의미가 담겨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헬레나는 콘스탄티누스의 이복형제들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콘스탄티우스의 또 다른 자식들을 박대했는데, 제위 계승 후보자였던 큰 아들 율리우스 콘스탄티우스를 특히 미워했다.[김응종, 『서양의 역사에는 초야권이 없다』 (서울: 푸른역사, 2005). 30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