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존 칼빈

존 칼빈, 『기독교 강요』2.8.34-37 주일의 영적 준수, 제5계명이 포괄하는 범위, 이 계명의 세 가지 부분, 이 계명에 덧붙여진 약속 34. 성일의 영적 준수 그러나 고대인들이 우리가 말하는 주일로 안식일을 대신한 데는 신중한 고려가 없지 않았다. 고대의 안식일이 대표한 저 진정한 안식은 주의 부활에서 그 목적이 성취되었다. 그러므로 그림자를 끝낸 그 날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 그림자였던 의식을 집착하지 말라고 하는 경고가 된다. 나는 일곱이라는 수를 고집해서 교회를 그것에 예속시키는 것도 아니다. 또 다른 날에 엄숙히 모이는 교회들도 미신만 없으면 나는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규율과 질서를 유지하는 것만을 생각할 때에, 거기는 미신이 없다고 할 것이다. 요약하면, 유대인들에게 진리가 상징으로 전달된 것같이, 우리에게는 그림자 없이 진리가 제시된다.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일을 쉬는 영원한 안식을 평생 명상해서, 주께서 성령으로 .. 더보기
존 칼빈, 『기독교 강요』2.8.31-33 안식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됨, 안식일 계명에서 아직 적용되는 두 가지 면, 안식일 계명 준수의 올바른 자세 31. 안식일 계명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다 만일 누가 일곱이라는 수에 대한 이 해석을 너무 미묘하다고 해서 싫어한다면, 나는 더 간단히 생각하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 예컨대, 주께서는 하루를 정하셔서 백성이 율법의 지도하에 영적 안식을 끊임없이 명상하게 하셨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또 일곱째 날을 제정하신 이유에 대해서도, 혹은 그 날로서 충분하리라고 보셨다고 하며, 혹은 자기가 하신 예를 보여 주심으로 백성을 더욱 잘 분발시키려 하셨다고 하며, 흑은 적어도 그들이 조물주를 본받게 하려는 것 이외에 다른 목적이 안식일에 없다는 것을 지적하려고 하셨다고 해석한다. 여기서 주로 제시된 신비를 우리의 수고를 영구히 쉰다는 점을 보존하기만 하면, 어느 해석을 취하든 간에 별로 차이가 없다. 예언자들은.. 더보기
존 칼빈, 『기독교 강요』2.8.28-30 {4계명 전체적인 이해, 안식일 계명의 중요성, 일곱째 날} 넷째 계명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 20:8-10). 28. 일반적인 해석 이 계명의 목적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기호나 일에 대해서 끝내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명상하며 하나님이 제정하신 방법으로 그 명상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이 계명은 다른 계명들에 없는 특별한 고려를 하므로, 해석하는 순서도 약간의 차이가 필요하다. 초대 교부들은 이 계명을 예시(豫示)라고 부르는 관습이 있었다. 그리스도가 강림하셔서 다른 상징들과 함께 폐기된 일이, 즉, 어느 하루를 외면적으로 지키는 일이 이 계명에 포.. 더보기
존 칼빈, 『기독교 강요』2.8.27 [공적인 맹세뿐 아니라 사사로운 맹세도 허용됨] 27. 그러므로 재판 받지 않을 맹세는 필연적으로 용납될 수 있다. 주께서는 위의 구절에서, 율법이 금지한 맹세만을 비난하셨다는 것은 건전한 판단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자기가 가르친 완전성의 실례를 친히 보여 주신 그리스도께서는 필요한 경우에 맹세하는 것을 주저하시지 않았다. 또 모든 점에서 선생에게 복종한 것으로 믿을 수 있는 제자들도 같은 예를 따랐다. 만일 맹세가 전적으로 금지되었다면, 누가 감히 바울이 맹세했을 것이라고 말하겠는가? 그러나 사정상 필요한 때에 그는 서슴지 않고 맹세했으며, 어떤 때에는 저주까지 첨가했다(롬 1:9, 고후 1:23). 그러나 문제는 아직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은 공적 맹세만이 이 금지에서 제외된다고 믿는다. 예컨대, 관리.. 더보기

반응형